"그동안 어떻게 살았니?. 그말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남북적십자사가 16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을 공개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울산지역 3명의 이산가족 가운데 중구 남외동 이근수(83)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날 남외동 이씨의 자택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 북한에 있는 누이동생 상봉을 앞둔 감회를 물었고 이씨는 담담하게 일관해 오다 동생에게 전한 첫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전남 고흥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부친의 일 때문에 함경도로 이주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씨는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집을 나선 이후 더는 함경남도 북청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한국전쟁 때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수용생활을 하다 이승만 정권 때 특사로 풀려나와 광주 등지에서 생활을 해왔다.

이후 1974년· 울산으로 이주해 목수로 활동을 하면서 생활해 왔다. 슬하에 4남을 두고 꽤 다복하게 살고 있었으나, 항상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잊지 못해 가슴앓이를 해왔다.

그러던 중 남북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에 신청해 살아있는 막내 여동생의 소식을 접하게 됐고,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오는 25일 꿈에 그리던 누이동생을 해후하게 된다.

여동생의 이름은 생각나지만 얼굴은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얼굴을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해도 그동안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고 애통해 했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직접 만나게 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씨는 여든이 넘은 고령의 나이지만,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할 만큼 기력이 센 편이다. 지금은 이마저도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자신과 함께 아들이 고모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됐을까하는 아쉬움이다. 분단의 역사가 남긴 슬픔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그동안 혈혈단신 가족도 없이 지내온 시간의 아픔을 동생을 만나게 되면서 치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종 명단에 포함된 남측 방문단 95명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북한에 있는 가족을 상봉하고 북측 방문단 100명은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남측 가족을 금강산에서 각각 상봉한다.

울산지역은 동구 거주 2명(김재일·오정자), 중구 거주 1명(이근수) 등 3명이 이산가족을 상봉하게 된다. 울산지역 거주자로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한 것은 지난 2010년 10월 동구에 거주하는 장시창씨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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