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적십자사는 28일 판문점 회담에서 2010년 11월 이후 3년 가까이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다음 달 25~30일 금강산에서 갖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남북 양측에서 각각 100명씩 헤어진 가족을 직접 만나게 되며, 남북 각각 40가족씩 10월 22~23일 화상(畵像) 상봉 형식으로 헤어진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화상 상봉은 2007년 이후 중단됐으나 상봉 규모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이번에 다시 도입됐다.

이산가족 상봉이 3년 만에 다시 성사된 것은 남북 관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산가족의 답답한 마음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남과 북에서 각각 1900가족 정도가 잠깐이지만 재회(再會)의 기쁨을 누렸다. 남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8800여명이고, 이 중 5만6000여명이 사망했으며, 남은 7만2000여명이 지금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 번에 100명씩 연간 한두 차례 상봉 행사를 갖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남측 상봉 신청자 7만2000여명이 부모와 아들·딸, 형제·자매를 다시 만나는 데 7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80%가 70대 이상 고령자다. 남북이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대다수가 헤어진 가족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한을 품고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다.

남북은 이날 합의문 맨 마지막 항목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生死) 확인, 서신 교환 실시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 정부는 그간 북측에 기회 있을 때마다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 방안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북측은 이번에도 이 부분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북측은 이산가족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인도적 사안으로 보기보다는 남측과 협상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로 여겨왔다. 북한은 이날 적십자 회담에서도 올여름 수해(水害)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제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바꿀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의 책임 있는 당국 간 대화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은 동독에 수감된 정치범을 빼내오면서 공식적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남북 이산가족 및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함께 다루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60년 넘게 가족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 온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겐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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