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中선양 한국총영사관 측 보호받다가 강제 북송

"영사관 측, 탈북 3명 민박집 머물게 해… 공안에 체포 당해
단둥에 억류된 사실 알렸는데도 정부는 기다리라고만"



국군 포로 이강산씨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2006년 8월 중국 선양의 한 안가(安家)에서 남측 가족을 만나 가족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이씨의 손녀, 며느리, 손자. /이강복씨 제공


지난 2006년 10월 중국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보호를 받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된 국군 포로 일가(一家)의 남측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24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국군포로 이강산(1996년 북한에서 사망)씨의 동생인 이강복(77)씨는 이날 "6·25전쟁 중 전사(戰死)한 줄만 알았던 형님의 손자 등 가족 3명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만나 주(駐)선양 총영사관 측에 신병을 넘겼지만, 영사관 측이 영사관이 아닌 위험한 민박집에 가족들을 머물게 했다"며 "그들이 공안에 체포된 후 강제 북송돼 생사조차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씨 등 남측 가족 3명은 "국군 포로 가족의 보호를 소홀히 한 국가는 가족들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에 따르면 이강산씨의 손자·손녀·며느리 등 북한 가족 3명은 2006년 10월 11일 오후 주선양 총영사관 측에 신병이 인계됐다. 그러나 선양 총영사관 소속 영사 2명은 이들을 영사관이 아닌 인근 민박집에 투숙시켰다. 이 민박집에는 이강산씨의 북한 가족 3명 외에 또 다른 국군 포로 2명의 북한 가족 6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공안이 들이닥쳐 국군 포로 가족 9명을 모두 붙잡아갔다.

이강복씨는 "영사관 측에 신병이 인계됐다고 해서 무사히 한국으로 올 날만 기다렸지만, 체포된 지 7일 만에 정부 관계자가 찾아와 가족들이 공안에 체포된 다음 날 북송됐다고 알려왔다"며 "정부 관계자는 '언론이나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들의 신상이 위험하고 재탈북도 어려워지니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측 가족들이 중국 지인을 통해 북한 가족들의 행방을 수소문한 결과, 이들은 바로 북송되지 않고 10월 하순까지 북ㆍ중 국경지역인 중국 단둥에 억류돼 있었다. 남측 가족들이 이 사실을 당국에 알렸지만 이들은 결국 10월 말~11월 초쯤 모두 북송됐다.

이강복씨는 "그해 8월 선양에서 만났을 때 '작은할아버지를 보니 이제는 살았다'고 매달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며 "정부에선 가만히 기다리라고만 하더니 2007년 초 이후 전화 한 통 없다.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워서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강산씨의 손자는 2006년 7월 선양 총영사관에 보낸 편지에서 "더 이상 중국에서 살 수도 없어서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보내고 있다. 저의 살길은 할아버지의 고향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의 도움을 호소했었다. 이강산씨의 가족은 북송된 뒤 정치범수용소 등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지난달 3일 국군 포로 한만택(북송 당시 72세)씨 가족에 이어 두 번째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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