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대개 666이란 숫자에서 불길함을 느낀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이 숫자는 말세에 나타날 악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돼있다. 히브리어나 영어의 알파벳에 순서대로 1, 2, 3… 등의 수치를 부여해 이름을 숫자로 풀어보는 것을 게마트리아라고 하는데 이 산법에 따르면 로마황제 네로가 666이 되고, 최근에는 컴퓨터와 빌 게이츠까지 이 숫자에 해당된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666이라는 숫자를 대단한 길수(吉數)로 여기는 모양이다. 김정일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추대된 곳이 666호 선거구다. 또 6을 세 번 곱하면 216이 되는데 이는 곧 김정일의 생일 2월16일을 의미한다. 216의 21은 21세기를, 6은 「조선민족이 세운 여섯 번째의 나라, 사회주의 조선」을 뜻하기 때문에 결국 『김정일 령도자께서 21세기 통일된 조선을 이끄실 태양이심을 뜻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독특한」 숫자풀이는 김일성 생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 민민전 방송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1912년 4월 15일이 김일성 생일임을 상기시키면서 이날이 「금세기의 가장 격동적인 날」이라고 흥분했다. 『동방에서 김 주석께서 인류의 태양으로 탄생하시던 날 서방에서는 자본주의 번영의 상징으로 예찬되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면서 이는 「동방의 일출과 서방의 침몰」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이 같은 숫자풀이는 「수령 우상화」의 산물로 그 근원은 이른바 주체사상에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세계의 종교현황을 보여주는 미국의 한 인터넷사이트(www.adherents.com)는 주체사상을 신자 수 세계 10위의 종교로 분류하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체」는 분명한 종교이며, 구 소련의 공산주의나 중국의 모택동주의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종교적이다”고 규정했다. 이 사이트는 『주체사상은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종교로서 유대교, 시크교, 조로아스터교보다 훨씬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한 신학자의 말도 소개했다.

▶북한정권은 그동안 미국을 「승냥이」로 비난해 오다가 이제 거꾸로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이념과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으로 표면화된 양측 갈등의 깊은 곳에는 가치관, 문화, 종교 등에 관한 인식차이가 내재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고, 그래서 「문명충돌」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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