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한국사람이 현 단계에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남북한 관계는 평화와 공존일 것이다. 서로의 체제에 대한 물리적 간섭 없이 전쟁하지 않고 각기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협력하다가 언젠가 이념문제가 민족을 갈라놓을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인식에 공동으로 도달할 때 자연스럽게 통일하는 것―이것이 많은 한국인들의 소박하고 현실적인 인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경제적 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이런 보편적 인식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많은 한국인들은 햇볕정책의 동기와 명분에 긍정할 것이다. 체제인정·평화공존·화해협력이 햇볕정책의 표면상이자 명목상 덕목인 이상 이것을 마다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햇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것이 우리의 장기적 목표로 추구되는 것이라기보다 단기적 승부를 노려 당대에 어떤 가시적 성과를 얻어보려는 김 대통령의 조급성·집착성에 따른 속도 조절의 실패를 지적한다. 그리고 「햇볕」이 문제라기 보다 「햇볕만의 정책(sunshine only policy)」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햇볕정책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찬반은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지 결코 본질적인 대립관계에 있지 않다.

부시가 던진 「악의 축」 경고도 그 이후 미국 고위관리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동전의 양면」쪽에 비중이 있지 전혀 「다른 동전」을 의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즉, 북한을 대하는 방법론의 차이라는 것이다. 부시정권은 힘을 바탕으로 한 상호주의에, 김 대통령은 원조를 통한 달래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현 정권측은 미국의 「힘의 논리」가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전쟁의 공포」를 거론하고 있고, 부시측은 「햇볕」은 효용성을 잃었으며 퍼주기는 버릇 잘못들이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평행선을 가지고는 될 일이 없다. 한국과 미국은 한 발씩 물러서서 한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정서, 즉 「동포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9·11 이후 아무리 세계질서 재편과 「문명파괴」 억지에 몰두한다 해도 개별적 케이스에서 해당국가들의 특수상황을 무작정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국이 9·11 이후 「다른 미국」이 됐음을 직시하고 지금의 미국의 관점에는 오로지 「테러」만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세계질서 재편의 도도한 흐름을 무작정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국의 관계에 비중을 두지 않을 결심이라면 좋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에 종속적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벗어나 국제적으로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 적어도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면 깊이 숙고하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 책임지고 행동을 해야 한다.

그저 시류에 따라,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식으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면서 반미를 얘기하고 데모를 부추기며 일반 시중 사람들이 사석에서나 할 수 있는 객담을 하는 것은 지도층이 할 일이 아니다. 일부 대중이나 단체들과 달리 적어도 정치지도층이라면 이런 상태로 나아가면 우리 앞에 어떤 장애가 있게 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어도 삼가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패배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의 문제다.

미국은 그것에 동의하든 아니든 김 대통령이 여기까지 끌고 온 「햇볕」의 발자국을 애써 지우려고 할 필요가 없다. 전략적으로 보더라도 부시는 다음 한국대통령과 새로운 조율을 하면 된다. 김 대통령으로서도 이제까지 자신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실물 이상으로 확대시키려고 다투지 말고, 정축(正軸)이 아닌 운동방식의 외교를 동원하지 말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문제 때문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한·미관계에 어떤 금이 생긴다면 50년 전통이 어이없다. /주필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