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통신선 끊기고 개성공단 사실상 폐쇄… 모든 접점 사라져]
공약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임기 초부터 벽에 부딪혀
'개성공단=평화' 인식 깨고 北에 보상 않겠다는 뜻 밝혀
北, 당분간 강경하게 나올 듯… 남북관계 긴장 장기화 가능성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사실상 폐쇄 단계에 접어들면서 남북 관계를 실낱처럼 연결해주던 끈이 모두 끊어지게 됐다. 군사 통신선을 포함, 남북한을 잇는 모든 접점(接點)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그 끈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한이 서로 완전히 다른 입장과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큰 부담이지만, '밑바닥까지 가서 새판을 짜겠다'는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식 새판 짜기?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에 대해 '남북 관계가 예측 가능한, 지속 가능한 관계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하나의 시금석'이란 입장을 갖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대북·통일정책인 '개성공단 국제화'도 이런 기조 속에 나온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이 진출하면 북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며 "개성공단이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해 항구적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개성공단에도 봄은 왔지만…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달 27일 개성공단 출·입경 통보 채널로 활용해온 서해 군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개성공단 사태를 일으켰다. 북한은 개성공단 차단·폐쇄 위협(3월 30일)→공단 진입 통제(4월 3일)→북 노동자 철수(9일)의 순으로 도발의 강도를 높여왔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일부 보수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화 제의'를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느낌"이라며 "정부로서도 국민 170여명이 몇 주째 과자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의 최강 교수는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통해서 북한이 무슨 억지를 쓰더라도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인 것처럼 국민 사이에서 인식되는 것을 바꾸려 하는 것 같다"며 "박 대통령이 이전 정부와는 구별되는 '박근혜식 새판 짜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절대 보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정부가 25일 북한에 '중대조치' 형식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북한이 거부하기 어려운 단계적인 조치를 왜 더 안 취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돌파구 열릴 수 있을까

이번 개성공단 사태로 남북 관계가 당분간 더욱 긴장된 국면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신범철 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은 "북한이 더 강경하게 나올 것으로 보여 상당 기간 남북 간 긴장 상황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큰 틀에서 볼 때 미·북 관계, 북·중 관계가 개선되면 풀릴 실마리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대 박원곤 교수는 "남북 간의 긴장 상황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같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은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반드시 극단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북한 스스로 6·15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개성공단을 몰수(沒收) 형식으로 가져가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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