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평양)에 가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과거 북한과 동맹체제를 형성했던 구 소련 시기까지를 포함, 모스크바의 최고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상호 방문을 통해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시점에서 최초의 정상 방문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다. 먼저 북·러 양국관계에서 러시아 정부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대북한 관계 복원 노력의 연장선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모스크바의 한반도 정책은 사실상 한국 편중이 뚜렷했다. 중국이 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에도 북한과의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과 대조적이다. 그 결과 모스크바는 평양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 반면, 중국은 국제적으로 북한 후원국의 입지를 다져왔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전반적인 외교 입지마저 위축시키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의 다자간 외교 협상에서 가장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94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 협상이 전개됐을 때 러시아는 완전히 배제됐었다. 이를 주도했던 미국은 북한을 대변하는 후원국가로서 중국을 지목해 협상 테이블을 짰다. 그후 96년에 시작된 ‘4자 회담’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 협상 구도로 정착되는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배제됐다.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로 하여금 한반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옐친 정부는 후기에 들면서 대북한 협력 채널 복구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등장한 이후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지난 2월에는 처음으로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푸틴 대통령의 이번 평양 방문은 그동안 러시아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한 관계회복 노력이 하나의 결실을 보는 상징적 행사이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국 방문에 나설 때에는 그 사안이 단순히 쌍무적 차원에 국한되는 경우가 드물다. 비록 동북아에서는 중국에 협상 중추국으로서의 지위를 빼앗겼으나, 국제무대에서는 G8의 일원으로서 러시아는 중국이 갖지 못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세계적 차원의 전략핵 문제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의 일방적 주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러시아는 최근 자국 안보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현안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은 바로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개발 시도이다. 이 문제는 동북아와 한반도 안보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미국의 NMD 개발은 98년 8월 말 북한이 5000km 사정거리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사건이 결정적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NMD는 공식적으로는 북한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탄도미사일 보유국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국의 전략핵 방어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NMD 개발을 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대통령으로서 처음 데뷔하는 오키나와의 G8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미국의 NMD 개발 저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을 것이다. 오키나와로 가는 길에 베이징과 평양을 들르는 것은 바로 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미국의 NMD 개발에 단서를 제공한 국가인 만큼 평양 방문에서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 대미 견제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외교적 지위를 회복할 결정적인 성과를 모색하고 있다. 즉, 김정일 정부로부터 더 이상 핵 개발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제스처를 이끌어낸다면 오키나와에서 푸틴은 미 NMD 개발 명분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전 홍 찬 부산대 교수·러시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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