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를 차기 정권 문제와 연관시키는 발언이 여권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북한 보도기관이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를 극렬 비방하는 가운데,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4일 일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외상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관계가 옛날로 돌아간다면 우려할 일”이라며 “북한이 (남한의) 다음 정권이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할지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 남궁진(남궁진) 정무수석도 기자들에게 “통일과 남북협력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며 “내년 하반기에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남북문제를 이용해 장기집권하려는 음모”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 총재는 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당직자들과 총재 측근들은 “이러고서 정치가 제대로 될 것 같으냐”고 흥분했다. 이 총재는 15일 김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는 “기가 막힌 일”이라며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장기집권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고 김기배(김기배) 사무총장이 16일 전했다. 이 총재는 또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 차기 대권을 놓고 재단(재단)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고 다른 당직자가 전했다.

특히 이 총재는 자신을 ‘반(반)통일적 인물’로 낙인찍으려는 ‘음모’에 모독감까지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철현(권철현) 대변인은 “이 총재는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도, 마치 ‘통일 반대세력이기 때문에 대권은 곤란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데 대해 무척 분노했다”고 말했다.

장광근(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이와 관련,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이 김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한 것임이 명백해졌다”며 “‘차기 정권은 북한의 잣대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이원창(이원창) 총재특보는 “이 문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한편으로 국군포로·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송환문제 해결 등에 더 적극 나서기로 했다.

◆청와대와 민주당

여권은 논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 공식대응은 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반응을 전한 것일 뿐”이라면서, “이 총재와 한나라당이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 대통령은 차기 정권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이 ‘이회창 총재=반통일적’이라고 연결시켜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차제에 한나라당의 통일·대북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민주당 박병석(박병석) 대변인도 “2년 후의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논쟁 확산을 경계했다.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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