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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추억] 영혼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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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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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이

아빠를 따라 여섯 살에 북한을 빠져나온 소년이 한국에서 정착교육을 받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꿈에서 빨간 피 많이 흘리면서 어떤 사람 누워있는 것 봤다."

탈북한 지 1년 반쯤 된 여성은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북한에서 식량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기 와서도 꿈을 자꾸 꾸잖겠니?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나가 쌀독 뚜껑을 열어보니 한 톨도 없는 거야. 아침은 뭘로 끓이나 안타까워서 가슴을 바짝바짝 태우다가 깨어났어.”

탈북한 지 2년이 되도록 계속 꾸고 있는 나의 꿈은 이렇다. 작가동맹에서 작가들이 창작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해임당한 나는 동료들이 일하는 창작실 주위를 배회하며 다시는 그 대열에 끼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로 인하여 소리 없는 눈물로 온 가슴을 적시고 있다. 다시 받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이따금씩 내 앞을 지나는 작가동맹 당비서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는 나를 알아보았으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이다.

나는 1998년 북한최고 문학창작기관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문학창작실 시인의 직책에서 해임당했다. 표면에 나타난 원인은 "지방진출(사실은 지방추방)"되는 남편을 따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작가동맹은 내가 창작활동을 계속하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문학공부를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해온 사연을 모든 작가동맹 작가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혜택을 받을 능력이 나에게 결여되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돈 많은 젊은 "시인"들을 끼고 도는데 이골이 난 작가동맹 시(시) 부위원장의 눈에는 정도(정도)의 문학을 고집하는 내가 눈에 든 가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초급당비서에게 나에 대한 자료를 부정적으로 윤색하여 본격적인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준다고 믿었던 초급당비서는 결국 나의 해임 명령장에 사인을 해버렸다.

쌀이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꾼다는 여인은 북한의 온성에서 식량고생을 엄청나게 하며 살다온 평범한 주부였다. 가족 넷이 먹을 것이 없어 아들과 딸을 학교에도 못 보내고 짐승 같은 생활을 하다 왔다고 했다. 자신은 파라티푸스에 두 번씩이나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는데 영양실조로 온 몸이 헐고, 머리칼이 빠지고 월경까지 멎어버렸다고 했다.

꿈에서 피 흘리며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다는 아이는 우울증 증상이 정상수치를 훨씬 넘어 자폐증 증상조차 보인다고 한다. 종일 두 마디 하면 잘하는 축이어서 오랫동안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 아이는 북한에서 죽음을 본 것이었다. 약물치료를 잘 해 자폐증을 고치면 아이는 다시 그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될까. 두뇌 속에 굵은 선으로 각인돼 있는 기억의 프로그램이 지우개로 지우듯 쓱쓱 지워져 버리게 될까.

쌀이 떨어져 온 밤을 애태우다 깨어나는 여인의 꿈도 한국사회에서 만끽하게 될 풍요로운 생활로 물로 씻듯 깨끗이 씻겨질 수 있을까. 시인으로서 내가 겪어야 했던 그 뼈저리던 그 해임의 고통도.

/전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 현 이화여대 여성학 대학원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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