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6년 월드컵 8강 진출은 여전히 하나의 신화다. 그 주역들이 수용소 등에서 수난을 겪은 사실은 신화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문 시사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는 지난 13일자에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여행사 대표가 지난달 북한을 방문해 당시의 북한 대표선수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다. 북한축구의 간판스타였던 박두익이 당시 선수들이 『수용소에 갔거나 지방으로 쫓겨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격분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잡지 기사를 국내의 일부 신문이 전하기도 했다. NK리포트 지난 3월 4일자에 기자가 썼던 『수용소에서 내가 만난 월드컵 영웅 』기사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홍콩 잡지 기사를 보고 월드컵 영웅들의 비극을 사실무근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아직도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를 그렇게도 모르는가』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잡지와 인터뷰한 박두익이 그들이 겪은 내용을 소상히 밝힐 수 있는 자유가 과연 북한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박두익의 입에서 진실이 나왔다면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북한에서는 영웅으로 개선했던 선수들의 불행한 과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67년 갑산파숙청의 희생자인 박금철이 유난히 아꼈던 신영규(월드컵 때 축구주장)가 지주의 아들이라고 해서 함경북도 생기령요업공장에 쫓겨간 일이며, 박승진이 해외에서 편지를 전달하다 간첩으로 몰려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사실은 웬만한 북한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기자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85년경 요덕수용소 구읍지구 3작업반 다리건설장에서였다. 그를 알아본 수용소의 많은 소년들이 몰려가 축구이야기를 들려 달라며 조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말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그는 풀려나 지금은 평양에 살고 있다고 한다.

박두익도 한때는 지방으로 쫓겨가 노역을 치렀다. 월드컵팀 모두가 지방으로 좌천됐고 그 가운데 일부만 복귀했을 뿐이다. 신영규를 비롯한 상당수의 선수들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과학자가 농장원이 되고 축구천재가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은 북한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사상이라는 굴레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처지가 오늘날처럼 되지 않았는가. 월드컵 영웅들의 불행은 곧 북한의 불행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불행이 더이상 왜곡되고 허위선전돼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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