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스위스에서 한국문학 낭독회가 열렸다. 먼 동쪽나라에서 온 문인들을 맞은 청중들은 생소한 언어 문학에 시종 뜨거운 관심으로 진지하게 귀기울였다. 한 나라 문학과의 진정한 만남은 인종과 국가와 이념 및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편견에서 해방시킨다.

좋은 문학작품들은 인물과 풍속 안에 현실과 역사, 사회상, 꿈과 집단무의식까지 고스란히 녹여내며 삶의 구체적 모습으로 형상화하기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해와 공감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예를 채만식이나 발자크, 루쉰, 마르케스와 바르가사 요사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작가에게 주어진 책무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며 당대적 문제와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두고 온 자리를 명확히 볼 수 있다거나 내 밖의 여행이 곧 나 자신에게 가는 것이라는, 곧 ‘떠남’은 ‘돌아옴’의 반어적 표현이라는 깨달음은 여행이 주는 미덕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신의 문학을 들고 다른 문화, 언어권에 들어서는 일은 문학을 한다는 것, 더욱이 한국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문하는 성찰의 계기가 된다.

몇 차례의 낭독회와 토론, 개인인터뷰에서 그들이 비중있게 던지는 질문은 한반도의 통일은 가능한가, 그것이 언제쯤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분단은 한국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등등이었다.

때마침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구촌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가 전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질문들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북한을 같은 나라로 생각하는가, 혹은 외국으로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다. 가볍게 던진 우문이라고 실소하기에는 뭔가 껄끄럽고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문제에 대한 외국인으로서의 객관적 인식과 그 한계, 어쩌면 이해시키는 것에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동행한 어떤 사람의 지적대로 동·서독을 각기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느냐, 북한이 우리에게 외국이라면 분단이라는 용어를 쓰겠는가 라고 반문했다면 현답이 되었을 것이다. 한민족 공동체라는 답을 설명하기 위한 그 어간의 머뭇거림과 긴장, 무언가 기어이 부연설명을 하고자 하는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백년 세월 격동을 하루같이 숨가쁘게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그리고 오랜 냉전시대의 금기, 억압, 콤플렉스, 아픔이 칼금처럼 새겨져 있는 사람들을 뿌리로 둔, 그들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란 그들의 자식이고 우리의 문학은 그 상처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것을.

전란의 파괴없이 수백년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오래된 거리, 오래된 집들이 주는 기품, 아름다운 풍광, 그림같은 평화로움을 대하면서, 마을의 산책로처럼 이어진 국경을 검문도 없이 넘으면서, 곧장 피와 눈물로 얼룩지고 찢겨진 내나라가 떠오르는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일주일 후 나는 비무장지대 송노평의 언덕에 섰다. 버려진 땅에 생태공원과 평화생명마을을 조성하여 ‘통합된 상생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였다.

사람이 사라진 마을, 너른 땅은 온통 지뢰밭이라는데 절로 자란 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그 어디쯤에 주춧돌이, 무너져가는 지붕이, 아직 떠나지 못하는 혼백이 숨쉬고 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땅의 끝에 선, 칼과 창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 상처입은 땅을 고르며 생명을 기르고 평화를 가꾸자는 아름다운 동화를 품은 사람들의 눈길에 아득히 겹쳐진 능선들이 딸려오는 듯 하였다.

/ 오 정 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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