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정부가 지난달 5일 서해상에서 남하한 북한 주민 31명 중 귀순자 4명을 제외한 27명을 판문점을 통해 4일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으로 송환을 바라는 주민 27명은 오전 11시쯤 판문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북측은 아무런 대답 없이 7시간을 끌다가 오후 6시쯤 우리측 연락관에게 전화를 걸어 "주민 31명 전원을 배와 함께 (이들이) 나갔던 해상 경로를 통해 돌려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측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에 엄청난 후과(나쁜 결과)를 미치게 될 것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당국자는 "자유의사에 따라 귀순한 4명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송환 문제를 둘러싼 남북 간 긴장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귀환하지 못한 27명은 합동 신문조사를 받았던 인천지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 대상자가 북으로 가지 못하고 판문점에서 발길을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7일 송환에 필요한 협의를 북측과 다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북, 왜 이러나

한국으로 남하한 북한 주민 중 일부만 송환된 사례가 2건(2005년·2010년) 있었지만 당시 북한은 별 문제를 삼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에 이렇게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체제가 약화됐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 지난달 서해상에서 목선을 타고 남하했던 북한 주민들이 4일 북측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판문점으로 향하던 중 임진각에서 잠시 내려 걸어가고 있다. /동아일보 제공 ①체제 위협으로 판단

이번에 남하한 주민은 역대 최대 규모인 31명이다. 이들이 돌아가 4명이 귀순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민심이 동요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급변 사태'를 대비한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 중인 상황도 북한을 민감하게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②역습 기회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도발 때문에 우리측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이 "남한이 '귀순 공작'을 했다", "인도주의 문제를 악용한다"는 공세를 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송환 문제를 역습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③추가 귀순 방지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북한은 다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고려대 조영기 교수는 "해상 귀순자가 속출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강하게 치고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양무진 경남대 교수는 "키리졸브 훈련이 끝나는 10일까지 북한은 압박 공세를 계속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북 대화나 남북 간 물밑 접촉 등을 계기로 '사과'를 요구하며 27명을 받아들일 것이란 분석이다.

◆연평도 이후 우리 조사 달라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4년 이후 북한 선원·선박이 남한으로 내려온 사례는 30건이다. 대부분 이틀을 넘기지 않고 송환이나 귀순이 결정됐다. 그러나 작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계기로 우리측의 조사 기간이 달라졌다.

작년 12월 3일 서해 연평도로 내려온 주민 3명과 12월 25일 백령도로 온 주민 1명은 한 달 넘게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안보부서 당국자는 "이번에는 31명이 내려왔기 때문에 25일쯤 조사한 것은 긴 시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은 우리 선박이 월선할 경우, 통상 한 달쯤 조사한 뒤에 우리측으로 돌려보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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