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리굴로(프랑스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장, "사회사평론" 편집장)

지난달 21일 낮 12시쯤 파리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대표부 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나의 휴대전화에 위협적인 내용을 남겨놓았다. 외교관이 주재국 국민에게 협박 전화를 거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나는 북한인들이 그 즈음 TV프랑스 제3채널에서 방영된 「은둔의 공화국」으로 인해 화가 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전화를 받은 일주일 후에야 진짜 경위를 알게 됐다.

얼마 전 나는 북한에 초대받아 가서 평양과 그 주변을 구경하고 온 프랑스 의회대표단의 한 의원을 만났다. 북한은 비폭력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라고 말하는 이 사람의 순진함에 놀랐다. 탈북자도 없고, 정치범수용소도 없으며 계급차별도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2001년도에는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하게 된다고 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도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다니! 방북 대표단장은 프랑스 정부에 내년 봄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하고, 이 좋은 뉴스를 경축하는 대단한 행사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나는 그에게 순진한 선전선동을 그만 두라는 비난의 편지를 썼다. 그에게 탈북자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도. 그리고 순진한 여행자들의 선의를 이용해 먹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오랜 전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바로 그가 이 편지와 내 휴대전화 번호를 북한 대표부에 보내준 것이다. 그는 내가 북한인들과 대화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뜻대로라면 북한 친구들은 협박의 방법을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들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을 매섭게 공격했고, 「되갚아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방북단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들먹였다. 이 때문에 단장이 내 편지를 그들에게 보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호의를 보이는 프랑스인 친구의 안전마저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TV방송 때문에 신경질이 난 것이 아니라, 평양에 프랑스대사관을 열라고 촉구하는 사람이 비판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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