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은 ‘경공업’과 ‘인민생활’이란 말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경공업’이란 단어가 21차례, ‘인민생활’이 19차례 등장한다. 8차례 등장한 ‘김정일’, 14차례 나온 ‘선군’보다도 많다.

제목부터가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다. 북한이 경제 분야를 신년사 제목으로 제시한 것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작년 제목은 ‘당 창건 65돌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였다. 바뀐 게 거의 없다.

사설은 또 올해를 ‘경공업의 해’로 규정하고 “경공업은 올해 총공격전의 주공전선(주력전선)”이라고 했다. 북한이 경공업을 강조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5년 ‘경공업 혁명의 기치’란 표현을 썼고, 1989년도 ‘경공업의 해’였다. 1994~1997년엔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란 표현이 등장했고 작년에도 “경공업과 농업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의 주공전선”이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25년째 경공업 혁명을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경공업 발전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라며 “하지만 북한은 올해에도 경공업 발전을 이끌 비전이나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주체화’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사설은 “주체철, 주체섬유, 주체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휘황한 전망이 열렸다”며 “원료, 자재생산을 주체화, 국산화하기 위한 투쟁에 커다란 힘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을 해도 인민들을 먹여 살릴까 말까 할 판에 경제성도 없는 주체철 등을 내세워 자립경제를 운운하고 있다”며 “중국이 아무리 개혁·개방을 주문해도 김정일한테는 쇠귀에 경 읽기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은 작년만 해도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외시장을 확대하고 대외무역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외경제 부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오직 자기 힘을 믿고 완강하게 돌진하는 자력갱생의 강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대북 소식통은 “작년 북한이 외자(外資) 유치를 하겠다며 조선족 기업인 박철수를 내세워 대풍국제투자그룹 같은 것도 만들었지만 아무 성과가 없자 대외경제에 기대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은 것 같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개혁·개방만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대신 사설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적극 개발·이용해 원료도 해결하고 자금도 확보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석탄·전력·금속·철도의 ‘4대 선행부문’ 중에서도 석탄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북한이 신년 사설에서 석탄을 최우선시한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통일부는 “결국 지하자원을 중국에 팔아넘겨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북한은 2009년 8월 김정일 지시로 중단했던 대중 무연탄 수출을 작년 1분기 이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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