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9일 외교·통일·국방부의 내년도 업무보고를 통해 사실상 집권 4년차의 새로운 대북·외교·안보 정책 틀을 제시했다. 올해까지는 대화를 통한 북한과의 협력 쪽에 무게가 있었다면, 내년에는 북한의 협조를 기대는 해보겠지만 그와 별개로 독자적인 통일 준비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모든 분야에서 ‘통일’ 강조

이 대통령은 이날 내년도 정부부처 업무보고의 마지막으로 외교통상·통일·국방부 보고를 하루에 모아서 받았다. 각 부처가 강조한 것도 ‘통일’이었고, 이 대통령이 주문한 것도 ‘통일’이었다.

외교부는 “내년에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주변 4강(强)과의 협의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작년도 업무보고에서는 북한과 관련된 것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한다”가 전부였다. 이 대통령도 외교부에 “한반도 통일 준비와 평화 유지를 위해 우방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과의 외교도 강화하라”며 “평화적 통일에 대한 지지기반 얻는 작업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과의 대화 창구인 통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대북정책’을 내세웠다. 국내적으로도 통일 준비를 위한 대국민 교육이나 통일을 위한 국론 결집 등 북한 정권이 꺼리는 정책들을 넣었다. 국방부 역시 작년에는 국방 선진화와 같은 군(軍) 내부 문제가 주된 정책 방향이었으나 올해는 북한을 적(敵)으로 설정한 공격형 정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대통령은 통일부에 대해선 “통일부는 그동안 경제부처가 할 일을 했다. 해야 할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목표는 통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북한을 지원하고 교류 사업을 하는 것이 통일부 업무처럼 됐던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MB, ‘햇볕’ 미련 버린 듯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서는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 쪽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뜻이 보인다. 이 대통령이 이날 “흡수통일은 논할 일이 아니다”고는 했지만, 이는 다른 나라와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것일 뿐 본심은 따로 있다는 해석이 다수다. 정부 핵심관계자도 “대통령이 내놓고 ‘흡수통일 하겠다’고 할 수야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고 “본격적인 남북 협력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거치면서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특별히 달리 대접하면 안 된다는 것이 소신이었다. 통일부를 없애려 했던 것도 “북한을 다른 외국과 같이 취급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거 정부의 통일 정책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봤다. 또 경제 위기상황에서 북한을 압박해 자극하기보다는 기다려보자는 계산,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기대 등도 작용해 정책 전환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내년부터는 “북한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형식적인 교류나 협력은 의미가 없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른 정책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화의 문을 닫고 ‘무한 대결’로 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도 몇 차례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정부 핵심관계자는 “북한에 ‘이제라도 2012년 강성대국 노선을 포기하고 협력을 통한 공존·공영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며 “국내에 대해서도 막연히 북한의 변화만 기대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통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앞으로 그런 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권대열 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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