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2년 10월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켈리의 HEU 의혹 제기에 대해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현재 부총리)은 “우리는 HEU를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다. 그러나 2003년 1월 북한이 입장을 바꿔 HEU 존재를 부인하면서 미·북 간의 지루한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특히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북한의 HEU 의혹에 대해 국내 좌파들은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실체를 부풀려 동북아 화해·협력무드를 차단하려 한다”며 북한을 거들기도 했다. “미국측 통역이 잘못됐을 것”이란 말까지 흘렸다.

그러나 켈리 차관보는 물론 동행했던 프리처드(Prichard) 한반도특사, 스트로브(Straub) 국무부 한국과장 등은 모두 네오콘의 대북 강경책에 반대하던 온건파로 당시 북한 반응을 왜곡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 북한은 6자회담 등에서 HEU를 계속 부인했고 노무현 정부도 ‘별것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2007년 7월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에 HEU가 있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고 말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도 내외신 브리핑에서 “HEU 개발과 관련해 종이 위에 개념도만 있어도 개발 프로그램 계획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의 문’은 8년 만에 열렸다. 북한이 작년 9월 “우라늄 농축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미국의 핵 전문가가 이달 초 방북(訪北)해 우라늄 농축 설비인 원심분리기 수백개를 직접 눈으로 봤다.

안보부서 당국자는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를 도입하는 등 HEU를 줄기차게 개발했다”며 “햇볕정책 10년 동안 HEU를 애써 무시한 결과가 지금의 위기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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