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서른을 훌쩍 넘긴 탈북 여성들은 남한에서 번듯한 직장 잡기가 어려워요. 그나마 쉽게 돈 벌 수 있는 게 노래방 도우미죠."

2008년 입국한 탈북자 강모(38)씨는 요즘 밤마다 경기도 군포의 노래방들을 전전하며 취객들을 상대한다. 강씨는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고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주려면 식당일로 버는 150만원으로는 부족했다"며 "그렇다고 이 나이에 공부를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2007년 입국한 탈북자 양모(42)씨는 경기도 안산의 한 영세 제조업체에 근무할 때 겪은 일들을 떠올리다 분통을 터뜨렸다. 양씨는 "일을 하다 문제가 생기거나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무조건 '네가 북에서 와서 그런 거야'란 식이었다"며 "덜 배우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우리 처지를 잘 이해해줄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많은 탈북자들이 아직도 자신들을 '2등 시민'이라 자조하는 가운데 탈북자 2만명 시대가 열렸다. 통일부는 15일 "지난 11일 탈북자 50여명을 태우고 태국을 출발한 비행기가 우리나라에 도착함에 따라 북한 이탈 주민 2만명 시대가 열렸다"며 "오늘 현재 북한 이탈 주민은 2만50여명"이라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2만 번째 탈북자는 양강도 출신의 여성 김모(41)씨다. 북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씨는 작년 먼저 국내에 정착한 모친의 권유로 두 아들과 함께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등 지난주 입국한 탈북자들은 현재 국정원과 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관계 기관의 합동 신문을 받고 있다. 결격 사유가 없으면 정부의 보호 결정을 받아 하나원(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 입소하게 된다.

국내 입국 탈북자가 1000명을 넘어선 것은 1999년, 1만명을 돌파한 것은 2007년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월남한 귀순자들부터 북한 이탈 주민으로 관리해왔다"며 "첫 1만명 돌파엔 59년이 걸렸지만 다시 1만명이 늘어나는 데는 3년밖에 안 걸렸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입국 탈북자의 출신지는 함경도가 77%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는 평안·자강·양강도(무순) 등 중국 접경지역 출신들이 많았다. 함경도 출신 탈북자가 많은 것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평안도 쪽의 압록강에 비해 함경도의 두만강이 강 폭도 좁고 수심이 얕아 탈북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들의 성별은 여성이 68%로 남성의 2배였다. 과거엔 남성 탈북자가 더 많았으나 2002년을 기점으로 여성 탈북자 수가 남성 탈북자 수를 추월했다. 탈북자들의 입국 당시 연령대는 30대가 33%로 가장 많았고 이어 20대(27%), 40대(15%), 10대(12%) 순이었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생활수준은 일반국민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27만원이고, 취업 분야는 단순 노무(31.5%)와 장치·기계조작(23.2%)에 집중돼 있다. 탈북자들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도 각각 48.6%와 41.9%로 일반국민의 70~80% 수준이었다.

탈북 청년들은 대학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발을 붙여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연세대에 다니는 탈북자 김영인(가명·27)씨는 "남한 학생들은 탈북 학생들이 영어에 대해 느끼는 스트레스를 상상도 못할 것"이라며 "탈북 대학생 3명 중 1명이 퇴학을 하고, 40%가 휴학을 하는데 그 이유가 영어"라고 했다.


/조선닷컴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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