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쏜 총탄에 형님이 맞지 않을까 늘 걱정했어요"
6.25참전 용사인 김대종(77)씨는 인민군에 입대한 작은형 태종씨와 전장에서 맞설 수도 있었던 당시상황을 떠올리며 "이데올로기란 것이 형제지간도 갈라놨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형제들이 헤어질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태종씨는 전쟁 1년 전 인민군에 입대했고, 대종씨와 큰 형은 1950년 10월 국군에 입대해 전쟁터에 나갔다.

북측의 여동생 계화(69)씨로부터 태종씨가 전쟁 중 한쪽 눈을 잃었지만 나중에 인민군 중장(소장 격)까지 승진했다가 1992년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대종씨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4일 금강산호텔 `개별상봉'에서 북측의 딸 순희(59)씨를 만난 한자옥(83)씨는 과자를 가득 담은 가방을 통째로 선물했다. 1950년 헤어질 당시 아내의 뱃속에 있던 순희씨에게 평생 과자 한번 사주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한자옥씨는 심장이 좋지 않아 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아내 박정심(79)씨의 사진을 어루만지다가 "딸을 만나 어느 정도 한이 풀렸지만, 아내를 못 봐 아직 응어리가 남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북측의 동생 김태석(67)씨를 만난 김태윤(77)씨는 "지난해 위암 2기 진단을 받고 위의 3분의 1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면서 "동생을 보려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북측의 동생들을 한꺼번에 만난 오성근(76)씨는 `성섭, 성남, 연숙, 연희'라는 네 동생 이름을 각각 써붙인 여행가방 4개에 200㎏ 정도의 선물을 나눠 담아 가져왔다.

북측의 딸 김성숙(63)씨를 만난 김승은(92)씨는 함께 간 아들 덕주(34)씨의 클라리넷 선율에 맞춰 함께 민요 '알로하오에'('그리운 사람'이라는 뜻)를 불렀다. 승은씨는 1950년 전쟁이 나기 전 평안남도 중화에 살 때 아내와 함께 이 노래 가사를 바꿔 딸에게 들려주곤 했다.

딸 성숙씨는 "어머니가 올해 2월 세상을 떠나셔서 제가 대신 왔다"면서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라고 크게 부를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남한의 이복동생 덕주씨는 "북쪽의 어머니가 생전에 이 노래를 자주 불러줬다면서 누님이 곧잘 따라했다"고 전했다.

한편 고령자가 많아서인지 남측 이산가족 가운데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잇따랐다.

김봉석(90)씨는 3일 단체상봉 후 숙소인 외금강호텔 앞 버스에서 내리다 미끄러져 오른쪽 다리를 삐는 바람에 이날 개별상봉 장소인 금강산호텔까지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최고령자인 김부랑(97)씨도 샤워를 하다 미끄러져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 개별상봉 장소에 나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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