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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추억] 새 교과서 받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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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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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성
/ 1984년 황해남도 재령 출생. 대전중앙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받던 날...옥수수 종이에 눈은 왕방울

『선생님. 교과서 문제가 잘 안 보여요.』

북한에서 학교 다닐 때 수학시간마다 선생님께 던져지는 질문이다. 문제를 풀어 놓고 보면 친구들의 답이 제각기 다른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답 또한 이상하다. 이유를 알아보면 서로 푼 문제가 달랐던 것이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각자 다르게 본 것은 우리들의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교과서 종이질이 너무 나빠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5년 나는 인민학교 4학년을 마치고 희망에 부풀어 고등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교과서를 받았다. 표지를 보니 새로 만든 교과서였다. 새 책을 쓰게 돼 너무나 흐뭇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리들은 모두 왕눈이 되고, 입은 하마만큼 벌어졌다. 교과서 글씨가 종이색깔과 잘 구별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농촌지원을 다니면서 옥수수 오사리(껍질)를 모아 학교에 내곤 했었다. 그것으로 종이를 만든다고는 들었는데 새 교과서를 한참 들여다보면서 『그게 정말이었구나』 실감을 했다. 공책은 아예 볏짚이 붙어 있어서 몇 장 안 되는데도 두툼했다.

한국에 와서 버려지는 종이만 보면 그 때의 충격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하나원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을 때 잘못 출력되거나 한 면만 쓴 종이들을 몽땅 갖고 나와 지금도 연습장으로 쓰고 있다.

종이질은 90년 들어 형편없이 나빠진 것이지만 교과서 자체가 부족한 것은 훨씬 전부터의 일이었다. 우리는 배우기는 전과목을 다 배워도 가질 수 있는 교과서는 한 사람 당 1∼2권 정도였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학급의 간부들에게는 수학, 영어, 혁명역사 등 중요 과목의 교과서가 주어지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책이 떨어진다.

나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고모부 덕분에 전 과목의 교과서를 구할 수 있었다. 공부는 기 차게 잘했지만 가난해서 다른 교과서를 구하지 못했던 친구 금성이와는 단짝이 돼 함께 공부했다. 내 교과서가 곧 녀석의 교과서가 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교과서를 다 가지고 있지 않은 사정 때문에 칠판에 교과서 내용을 써 놓고 수업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그것을 다 받아적는다. 교과서를 손으로 복사한다고 할까. 우리 반 한 친구의 부모님은 딸의 교과서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주기도 해서 선생님과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곳서 등교 할 때면 학원에서 전단지나 공책을 공짜로 나눠준다.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잘도 버린다. 하얗고 매끈매끈한 종이들. 북녘 친구들은 종이같지 않은 종이에 먹이나 잉크로 글을 쓴다. 그래도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나 우리들이나 공부에는 참 열성이었던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책과 공책, 한 장의 종이도 너무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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