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북한 초청으로 강원도를 방문한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들이 현대아산의 독점사업 구역인 금강산 구룡연폭포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북한이 지난달 하순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원 20여명에게 금강산 단체관광을 시켜준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금강산 관광지구에 대한 사업 독점권을 보유한 현대아산측엔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명백한 사업권 침해”라고 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 20여명은 북한 외무성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21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강원도를 방문했다. 리칭장(李慶江) 참찬(參贊·참사관에 해당)이 인솔한 대사관원들은 6·25 당시 중국의 전쟁영웅 황지광(黃繼光)의 이름을 딴 황계광중학교, 원산농업종합대학, 송도원국제소년야영소 등을 돌아본 뒤 마지막 일정으로 금강산을 관광했다.

이들이 돌아봤다고 밝힌 만물상, 구룡연폭포, 해금강 등은 모두 현대아산의 독점사업 구역이다. 외교부 웹사이트엔 “만물상의 신기한 봉우리와 특이한 돌, 해금강의 별천지, 구룡연의 졸졸 흐르는 개울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마치 몸이 세상 밖 무릉도원에 있는 것 같았다”란 기행문까지 적어놓았다. 구룡연폭포 앞에서 22명이 단체로 찍은 기념사진도 올라왔다.

현대아산은 2000년 북한 아태평화위에 5억달러를 주고 금강산 관광 등 이른바 ‘7대 대북사업’에 대한 사업 독점권을 따냈다. 하지만 현대아산측은 중국 외교관들의 금강산 무단 관광 사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거 관광이 정상일 때는 북측에서 자기네 손님을 데려올 경우 반드시 통보를 해줬다”며 “이번에 아무 말 없이 우리 관광코스를 다녀갔다니 불쾌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4월 금강산 관광지구에 있는 우리 정부와 민간 소유 부동산을 일방적으로 동결·몰수조치한 뒤 중국 여행사들에 금강산 단체관광을 허용한다고 통보했다. 일부 중국 여행사들이 관광 상품을 내놓자 우리 정부와 현대아산은 강력 반발했다. 5월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중국 국가여유국(관광공사에 해당)에 공문을 보내 북한의 부동산 동결·몰수 조치가 계약위반임을 설명하면서 금강산 지역을 중국인 관광 대상 지역에서 빼달라고 공식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민간인들도 아니고 남북 간의 이런 미묘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중국 외교관들이 북한이 초청했다고 덥석 금강산에 놀러 갔다니 그 속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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