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소네(중증근강홍) 전 일본총리는 G8 서밋(주요 8개국 정상회담)을 ‘정치 올림픽’에 비유하곤 했다. 강대국 정치 지도자가 지력(지력)과 순발력과 설득능력을 겨루는 국익의 종합승부라는 뜻이다. 26번째 ‘정치올림픽’이 될 2000년 서밋이 세계 50억 관중의 시선을 집중시킨 채 오는 21일 일본 오키나와(충승)에서 막을 올린다. 2박3일간 열릴 오키나와 서밋의 ‘출전 선수’ 중엔 물론 8번째 출장하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자타공인의 최강이다. ‘강한 러시아’를 외치며 첫 출전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만만치 않은 전력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미국의 NMD(국가미사일방위)체제나 유고 문제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일 가능성이 적지않다.

블레어 영국총리와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는 대체로 미국 편에 가담할 전망이다. 반면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슈뢰더 독일 총리, 아마토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 연합군’으로 결속을 다지며 한 목소리를 낼 것이 확실하다.

주최국인 일본은 대회 직전에 선수가 바뀐 처지다. 오키나와 서밋은,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것도 그렇고 원래 오부치(소연혜삼) 총리를 전제로 짜여진 무대였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모리(삼희랑) 총리가 대타로 출전, 의장을 맡게 됐다. ‘준비 안된’ 모리 총리가 잘해낼수 있을지 일본의 정·관계는 좀 걱정스런 눈치다.

물론 각국 실무자간 사전조율에 의해 서밋의 주요한 골격은 이미 다 짜여져있다. 의장국 일본은 IT(정보기술) 문제에 가장 중점을 두고 서밋을 꾸려갈 구상이다. 일본은 스스로를 아시아 대표로 자인하며 선·후진국간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토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1차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IT의제엔 ‘IT혁명의 빛과 그림자’란 부제가 붙어있다. 전자상거래의 국제 룰을 제정하고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공통기준을 만들자는 합의가 ‘빛’에 해당된다. ‘그림자’와 관련해서는 후진국의 정보소외, 빈부격차, 정보약자(약자) 문제 등이 논의된다.

사회문제가 다뤄질 제2차 정상회담에선 ‘인간게놈’ 문제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게놈 해독이 완료된 직후 열리는 서밋이어서 타이밍도 딱 좋다. 해독된 유전자 정보의 취급·악용규제나 신약개발·연구 등의 분야에서 국제협조 체제를 구축하자는 합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제3차 정치분야 회담은 정상간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되는 무대다. 러시아는 미국의 NMD 저지를 위해 공세를 펼친다는 전략이며, 유럽 정상도 여기에 가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친)미국 성향의 캐나다나 영국도 NMD 문제 만큼은 미국 입장을 봐주지 않겠다는 자세다. 일본만이 소극적으로 미국 편을 들고 있으며, 자칫 미국이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로선 정치분야 회담의 지역정세 의제에서 다뤄질 한반도 문제가 가장 관심이 끌린다. 일본 주도에 의해 이번 서밋에선 한반도 관련 특별성명을 내기로 사전합의가 이뤄져있다. 성명은 G8이 남북대화를 지지·지원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드라이브를 거는 데는 아시아의 대표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깔려있다. 다만 한반도 및 북한 문제의 대응을 둘러싸고 G8 사이에 미묘한 입장차이가 감지된다. 지난 12~13일 열렸던 G8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이 북한 미사일과 일본인 납치의혹을 제기했으나 다른 장관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WTO(세계무역기구) 시애틀 회의 때처럼 반전·평화 운동가들이 몰려 대규모 시위를 벌일 가능성도 있어 일본 경찰을 긴장시키고 있다.

동시에 서밋의 리더십 약화 문제를 지적하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서밋에서 지구적 차원의 고려는 약해지고 갈수록 ‘부자의 사교클럽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G8 서밋은 이미 유엔 안보리 이상의 비중을 갖게 됐으며, 이를 대체할 다른 무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동경=박정훈기자 jh-park@chosun.com

오키나와 G8서밋의 주요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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