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미국 조야에서 논쟁점으로 제기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과연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무려 19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한 대도 아니고 4대의 민간 비행기들을, 한 비행장도 아닌 세 곳에서 납치했고, 미국 내 비행학교 훈련을 포함해 수년간의 모의와 준비를 거쳤는데, 어째 하나도 사전에 탐지해 저지하지 못했느냐는 비판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전혀 다른 비난을 받고 있다. 고위 간부들이 비리로 구속되거나 비리 연루 의혹 속에 사임하면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어, 새삼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 연간 300억달러의 예산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방대한 정보기관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은 당연했다.
우선 도마에 오른 건 연방수사국(FBI)이었다. 가령 외신보도들 가운데는, 1993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지하실 폭탄테러를 감행했던 람지 유세프(Ramzi Yousef)가 언젠가는 여객기를 납치해 미국 CIA(중앙정보국)나 펜타곤 건물로 충돌할 것이라는 첩보를 1995년 필리핀 당국이 입수해 FBI에 알려줬다는 것도 있었다. (유세프는 그해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현재 미국에서 종신형 복역 중이다)

더욱 조명을 받는 쪽은 CIA이다. CIA는 지금 은 미국 내에서는 일절 정보·공작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해외 정보를 총괄하고 있다. 9·11 테러의 사건 성격이나, 음모와 자금 조달이 아랍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과정을 볼 때, CIA가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하기는 도둑 하나를 순라군 열이 못 막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또 CIA로 말하면 냉전 종식 이후 그 조직과 기능 등이 상당히 감축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미국 정보기관들이 인적정보보다는 첩보위성과 도청 등 기계정보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과격단체 같은 데는 전혀 침투도 되지 않고, 첩보도 박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로서는 과거 8년간 민주당 정권에서 CIA의 나사가 풀린 것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중요한 것은 문제점을 어떻게 고치느냐이다. 9·11 테러 후 미국은 테러 방지 예산을 늘리고 관련 법도 고쳤지만, 아마도 그것 외에, 공개되지는 않지만 더욱 본질적인 정보기관 개편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거나 이미 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9·11테러 사건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도 테러에 대한 안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의 정보기관들도 연간 수천억원의 큰 돈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민들이 안녕을 믿고 맡길 만큼 신뢰할 만한 활동을 하고 있을까.

가령 국민들이 대북 정보수집과 방첩활동이 주임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국가정보원은 현 정부 들어 한동안 햇볕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겸하면서 정체성 시비를 초래하기도 했다. 국정원(전 안기부)은 오래 전부터, 국내 정치사찰이나 공작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런데도 경제단장이니 국내담당 차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비리 의혹으로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혹시 국내 파트는 아직도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정작 대북·해외 파트는 변질되거나 약화된 것은 아닌가.

더구나 국정원 내부에서 사조직 내지 인맥 편가름 같은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었다면, 실로 우리 국가 안보와 국민 안녕이 안에서부터 문드러져 온 것 아니었나 하는 염려를 씻을 수 없다. 우리 정보기관들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심각한 자성과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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