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 북한을 탈출한 81세의 국군포로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로 북송(北送)될 위기에 빠져 있다. 충남 출신인 이 고령의 국군포로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중국 공안은 지난 8월부터 검문·검색을 강화해 탈북자 수십명을 강제 북송했고, 이 중에는 2001년 귀환한 한 국군포로의 딸과 외손자도 포함돼 있다. 우리 외교공관은 국군포로 가족이 민박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데려오려고 했으나 중국 공안이 먼저 이들을 잡아가 북한에 넘긴 것이다. 북한을 탈출했다 강제로 북한에 송환된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돼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극형(極刑)에 처해지는 사람도 있다.

정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가 5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서 싸웠던 이들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는 물음이 절로 나올 만큼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 포로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는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을 제정한 게 6·25전쟁이 끝난 지 53년 만인 2006년 3월이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 79명과 그 가족 182명의 상당수는 스스로 북한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50년이 더 지난 6·25전쟁 때 숨진 미군 전사자의 유골을 찾기 위해 북한측과 10년 이상 대화를 계속하고 있고, 북한측에 '유해 발굴 비용 플러스 알파'를 현금으로 지급해 왔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정한 대가를 주고 이들을 데려오는 '독일 정치범 송환 방식(프라이카우프·Freikauf)'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독 정부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후 서독으로 탈출하려던 동독 주민들이 국가보안사범으로 투옥되는 일이 빈발하자, 동독에 현금 또는 현물을 제공하고 이들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독일 연방은행 추계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89년 사이 3만여명을 서독으로 데려오면서 동독에 지불한 액수는 34억6000만마르크로, 1980년 환율로 계산하면 1조7300여억원이다. 1인당 5700여만원을 지급한 셈이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5년 이후 정부와 민간이 북한에 제공한 경제 지원 규모가 9조110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의 6.1%면 560명 국군포로 석방을 위해 1인당 1억원씩도 쓸 수 있는 규모다. 정부는 국군포로를 데려오는 데 돈과 현물을 제공하는 '독일 방식'을 통해서라도 국군포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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