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납북되고 생사조차 모른 채 22년을 살아왔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 꿈만 같습니다."
1987년 1월 15일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북된 동진호 선원 진영호(49)씨의 누나 곡순(56)씨는 26일부터 열리는 추석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소식에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곡순씨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날 너무나 꿈만 같아 전화를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이번 상봉 행사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 참여한다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곡순씨는 "5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동생이 결혼도 못하고 납북된 충격으로 부모님이 시름시름 앓다 3~4년 뒤 돌아가셨다"며 먼저 세상을 뜬 부모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 최석수(59)씨는 "처남이 납북된 뒤 백방으로 생사를 확인하려 애썼으나 알 길이 없었다"며 "정부가 무관심한 것 같아 야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곡순씨 부부는 영호씨가 납북된 뒤 동진호 선주사가 있던 전라도를 수차례 찾았으나 갑자기 이 회사가 문을 닫았고 정부에서도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답답했던 부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과 함께 온 응원단을 쫓아다니며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가족이다. 동생을 돌려달라'는 요지의 현수막을 보여 주며 동생의 생사 확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남편 최씨는 "미국은 여기자 2명을 구하려고 전직 대통령까지 북한을 방문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며 "고기잡이 나갔던 사람이 22년간 못오는 사태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이번 상봉행사 방문단에 포함시켜 고맙다"면서도 이산가족에게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남북교류 방안을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곡순씨는 "동생이 북한에서 결혼도 했다는데 처음 보는 올케와 조카들도 궁금하다"며 "동생 가족이 곱게 차려입을 수 있도록 한복을 선물하고 싶다"고 22년 만에 남동생을 만나는 누이의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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