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지리산 빨치산이 있었다면 북한엔 ‘평북 유격대’가 있었다.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 50년 전 평안북도 서해안에서 활동한 ‘유격대’ 백마부대 노병들이 92년 실향민들이 성금을 내 세워준 ‘충혼탑’ 아래 모였다.

“계급도 군번도 없지만, 북위 40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젠 우리도 모습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

유격 백마부대는 1950년 11월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지역청년·치안대 요원 등을 주축으로 창설된 2600 병력의 비정규군. 51년 7월 30일 보급물자를 운반하던 중공군 정크선 2척을 격침시키고 수풍~정주간 철도터널을 폭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2년여 유격전을 벌이며 55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측의 지리산 빨치산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급자족으로 생존했습니다. 주요 무기는 나무로 깎은 창이었고, 소총과 실탄은 인민군에게서 노획했습니다. 도서지역이라 식량이 떨어지면 갈매기도 잡아먹었지요. ”

그러나 맨주먹으로 싸우다시피 한 노병들은 휴전 이후 존재조차 잊혀진 채 망향의 한(한)만 달래왔다. 고향에 남은 가족에게 불이익이 갈까 두려워 신분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한봉덕(한봉덕·74)씨는 “이산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쉬쉬해 오다가 이번 정상회담 이후 용기를 내 가족 생사확인 신청을 했다”며 “고향에 전적비를 세우는 게 살아서의 꿈”이라고 말했다. 여군으로 활약한 임용녀(임용녀·70)씨는 “피란길에 가족을 잃고 헤매던 중 이들을 만나 대원으로 활동했지만 그 길로 가족과는 생이별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동권(윤동권·65)씨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서 6·25 참전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그래도 다시는 그런 비극이 오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 좋다”며 웃었다. /이규현기자 whi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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