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치면, 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50여년 만에 1루에 진출한 셈이다. 홈 플레이트를 밟을 때까지 양측 모두가 성실과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홈런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방한한 피델 라모스(72) 필리핀 전 대통령은 23일 조선일보와의 회견에서 전쟁 발발 50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높이 평가하고, “남북한이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한반도의 비무장화를 이뤄갈 것”을 당부했다. 미국 육사 졸업 2년 후인 1952년8월 소위로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지금도 시가를 입에 문 채 농담을 즐기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6·25 참전 용사로서 전쟁 50주년을 맞는 기분이 어떤가?

“우선 전쟁에서 살아남아 지난날 함께 싸웠던 22개국 전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50주년에 앞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한의 화해를 위한 좋은 출발이었다. 회담을 주도한 김 대통령에게 축하해주고 싶다. ”

―6·25 당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나는 필리핀군 제20대대 소속으로 동두천과 연천, 평강·금화·철원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에 배치됐었다. 당시 소위였던 나는 수색대장을 맡았다. ‘최전방의 최전방’에서 적군 수색대와 마주치는 게 다반사였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양측에서 총이 불을 뿜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임진강변에서 벌어진 ‘이리’ 전투였다. 당시 중국군과 일대일로 맞서는 육박전을 벌이기도 했다. 필리핀은 50년9월 처음 참전했다. 더 일찍 파병할 수도 있었지만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느라 4개월 지연됐다. 한국에 처음 파병된 필리핀 부대는 제10대대였고, 1년 간격으로 모두 5개 대대가 파병됐다. 우리 대대는 두번째였다. 나는 6·25 이후 한국과 유엔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

―남북 정상간의 악수와 포옹을 어떻게 느꼈나?

“남북 지도자의 만남은 첫걸음일 뿐이다. 다음 단계는 비(비)무장화이다. 나아가 경제, 정치, 문화적 교류가 추진돼야 한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남북간 화해는 이제 첫걸음에 불과하다. 아기가 걷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다. 60년동안 누워있을 수는 없지 않나. ”

―한국이 정상회담 이후 6·25 기념행사 규모를 축소한 데 불만은 없나?

“김 대통령이 기념행사 규모를 줄였다고 들었다. 훌륭한 조치다.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다. 남북한은 아직 휴전 상태다. 남북한은 이제 김정일의 서울 방문 등 합의의 제2, 제3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서로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면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경영에서 ‘윈·윈(Win·Win)’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측 모두 서둘러선 안 된다. 인내와 성실이 필요하다. ”

―장기적으로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으로 보는가? 철수한다면 역내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나?

“미국은 역내에서 한국, 일본, 필리핀과 상호 방어조약(MDT)을 맺고 있다. 미국은 아태 지역에 커다란 관심과 이익을 갖고 있어 한반도에서의 완전 철수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미군 철수는 안보를 고려해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 ”

―북한의 아세안지역포럼(ARF) 가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야구 이야기를 기억하나. 남북 정상회담은 1루, 김정일의 서울 방문은 2루, 남북 경제협력은 3루가 될 것이다. ARF는 그 다음 다음이다. 지금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

―필리핀은 당초 예정대로 오는 7월 중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필리핀 당국이 노력 중이다. 남북간 화해로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 /김성용기자 sy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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