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5일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준 데 이어 13일 현대아산 유성진씨도 석방했다. 뚜렷한 이유나 명분도 없이 수개월 동안 억류했던 미국과 한국의 ‘인질'을 비슷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북과 한·미 공조체제 사이에 가로 놓였던 큰 장애물이 제거됐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상황으로 복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떤 형태로든 대화 국면이 전개되겠지만, 인질석방은 북한이 핵포기에 대한 근본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준 유화적인 제스처이므로 의미 있는 상황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는 “북한이 ‘사면'이나 ’추방' 등 편법을 써가면서 인질을 석방한 건 대화를 위해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므로 6자회담이든 미·북 양자대화든 곧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대북제재는 인질문제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므로 인질을 풀어줬다는 것이 북핵문제 해결에 큰 변수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도 “한·미 인질석방이 미·북이 탁자에 마주 앉게 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며 핵군축 협상을 하자고 주장하는 북한입장에 변화가 없는 한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미·북이 동상이몽 상태에서 애매하게 합의했던 ‘9·19 공동성명’식의 해결은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에 확실하게 동의하기 전엔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하는 대가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김 위원장 이후의 후계구도를 인정해주는 새로운 패키지로 북한과의 협상을 시도해볼 만하다"고 했다.

북한을 오랫동안 다뤄본 한 북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굴러들어온 떡이나 다름없던 미국 여기자와 유씨 카드를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던진 것은 갑작스러운 입장변화라기보다는 큰 전략 안에서 내린 결정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달 초 여기자 구출을 위해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김정일 면담결과를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아직 확실치 않기 때문에 미·북대화 진전 여부는 좀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질석방 이후의 상황이 핵문제 해결 과정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새로운 상황을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받아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남북관계가 그동안 너무 경색된 것 아니냐는 한국 내 여론을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 입장이 상당히 미묘하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북대화 재개를 위해선 인질석방 같은 제스처보다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의사 표시가 중요하다"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 틀 안에서 미북 고위급 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이므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로 오바마 행정부에 명분을 주면 협상재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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