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두 지도자가 처음 악수를 하고, 이어 건배하고,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을 전 세계는 엄청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세계도 놀랐지만, 한국 국민들 자신이 분출해낸 감정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에 대한 화답이었다.

남북간에 형성된 새로운 동포애의 정당성은 더 시간이 흘러야 입증되겠지만 지난 반 세기에 걸친 의심, 불신과 적의를 상당부분 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비록 무척 늦었지만 한반도의 평화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 같다.

정상회담 전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민스럽고 느리게 진행된 협상, 흥정. 물론 양보도 있었다. 양측이 벼랑 끝 전술을 벌이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적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때로는 비웃음을 받았고, 많은 경우엔 비판을 받았지만 한반도에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것은 대북 관계에서 처음으로 남한을 미국의 앞에 놓았다는 점에서 대담한 행동이었고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북한에 회담을 촉구한 것은 미국이었고, 미국이 남북한의 옆구리를 찔러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조그만 스텝이라도 밟도록 요구했다. 미국의 그 같은 주도권은 서울에서 항상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미국 행정부를 거친 비판에 직면케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정치적 반대를 야기할 수 있는 기반을 포용으로 바꿨고, 결국 미국이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서 신선한 접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른바 페리 보고서로 알려진 정책이다. 페리 보고서는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도 안전하다는 점을 햇볕정책에 이어 추가적으로 입증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북한에 먼저 극적인 제안을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았고, 북한에 대한 정상회담 제의가 뒤따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약속된 사항을 실제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러한 실천을 위한 남북한간의 관계와 절차가 자리잡고 있다. 국제정치적으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남북한에 의해 시작되고, 계획되고, 실천됐다는 점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지지를 받았지만 정말 한국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의 많은 당사자들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장기적으로도 그렇고, 급박한 사안도 있다. 그러나 반 세기의 분단을 거친 한국은 드디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요성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비록 성취하는 것이 별로 없게 될지라도 한국이 스스로의 운명을 실제로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국 국민들을 더욱 들뜨게 하는 것은 제3자의 개입 없이 남북한이 함께 만났다는 점이다.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냉전이 깨지고 있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는 가운데, 4강의 수도에서는 그 의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분명 가장 만족하고 있고, 시작 전 이미 정상회담을 축하했다. 러시아가 뒤처지기를 원치않는 푸틴은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향할 예정이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감축이라는 점에서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통일 한국이 결국 일본의 경제 헤게모니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남북한이 매개 없이 직접 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4강은 이제 각각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남북한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안정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경제적이고 안보적인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 같은 6자 협의는 국외자들을 남북대화에 끼워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재평가되고 있는 각국의 이해들을 조정하는데 필요한 기제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남북 대화는 주변 강대국들간의 협력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차원을 넘어 동북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주변 강대국들은 진보가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서로 엮어 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계속해서 자신의 운명의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

/미 에모리대 총장

/정리=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 제임스 레이니

▲미 아칸소주 출생

▲미 예일대 졸업

▲미 에모리대 신학과 교수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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