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4일 단독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

"94년이후 북(北) 유화제스처에 번번이 속았다" 단호한 입장
대북(對北)제재 효과적으로 작동 관계개선 서두를 이유없어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5일 '인도주의적 사안과 핵 문제 분리' 원칙을 집중적으로 언급하느라 분주했다.

북핵 이슈는 북한에 억류됐던 커런트 TV 소속 두 기자의 석방과는 분리된 사안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핵 폐기'라는 미국의 북핵 접근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Nothing has changed)"는 것이었다. 빌 클린턴(Clinton)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즉각 미북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보는 시각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과 김일성 면담 이후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던 미북 관계는 '제네바 핵 합의'로 이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번에도 노골적으로 대화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가 과연 이 원칙을 계속 고수할 것이냐는 의문이 계속 제기된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은 카터 방북 때와는 다르다며, 북핵의 폐기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에선 북한의 2차 핵실험(5월 25일) 후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부시(Bush) 동북아정책연구센터 소장은 5일, "북한의 핵 정책 변화는 후계체제가 확립된 후에나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1994년의 북한은 핵무장에 대해 모호했고, 대포동 미사일도 없었다. 지금은 올해에만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2차 핵실험을 통해 장래에 미국을 위협할 수도 있는 핵탄두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또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2005년 9·19 공동성명도 사실상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 '북핵 폐기'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은 미북 대화는 북한의 '시간벌기' 전술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것을 오바마 행정부는 잘 알고 있다.

카터와 클린턴은 방북 목적도 다르다. 클린턴의 목적은 처음부터 4개월 넘게 북한에 억류된 두 기자를 석방시키는 것에 한정돼 있었다고 오바마 행정부는 강조한다. 따라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환대(歡待)받고 미국 기자들이 풀려났다는 이유만으로, 미북 관계를 개선할 계획이 전혀 없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874호가 예상보다 효과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도 오바마 행정부의 원칙론 고수 입장을 강화시켰다. 1874호 결의에 따라 군수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됐던 북한의 강남 1호를 회항시키고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할 수 있게 돼, 굳이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대북 제재를 꺼리던 중국이 이전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대북제재에 참여하는 것도 오바마 행정부엔 고무적이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對北) 라인을 이끄는 이들이 10년 이상 북한 문제를 다룬 베테랑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으로 경수로 협상 문제를 총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의 개리 새모어(Samore) 비확산 담당 조정관은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과의 협상에 참여했다. 커트 캠벨(Campbell)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990년대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서 북핵 문제에 관여했었다.

이들은 클린턴-부시 행정부가 지난 16년간 북한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속아 농락당했다고 보고, "영변을 세 번 살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일단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이 가져온 정보와 북한의 동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비핵화 이행'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북한으로부터 이에 대한 약속을 들은 후에야 입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일각에선 북한이 일단 대화에 복귀 후, 미국이 바라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할 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수정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이하원=워싱턴 특파원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