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가시돋친 성명...美선 무관심

미국 행정부는 북한 외무성의 23일 부시 대통령 비난 담화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처지에서 북한과 설전을 벌일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태도다. 무시를 최선의 방책으로 여길 만큼 미국은 북한을 관심권 밖으로 밀어 놓았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북한과의 대화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게 국무부의 입장이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우리는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만큼, 응하느냐 여부는 북한에 달려있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미국의 대화 재개 방침은 지난 6월 발표 이후, 갈수록 ‘구두선(口頭禪)’ 비슷한 형편이 되고 있다. 실행 가능성이 희박한 줄 알면서도 입으로만 되뇌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동맹국인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남북관계가 삐걱대는 원인의 상당 부분을 부시 행정부에서 찾으려는 김대중 정부를 달래고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방책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미·북 관계가 악화될 경우 그 책임론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한 생각도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입장은 북한과 서둘러 마주앉거나 갑자기 돌아앉는 식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겉으로 내색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북한에 대한 회의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외무성 담화도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표현들과 함께 미국이 주요 의제로 제시한 재래식 군사력 감축 문제를 ‘파렴치의 극치’ ‘망상’ 등으로 강도높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테러리즘은 물론, 핵과 미사일·화생방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적당한 시점을 택해 북한이 중동지역에 미사일 등 무기와 관련 기술을 수출하고 군사교류를 하는 유통경로를 차단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공식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강경론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탄저균 우편물 테러와 관련, 북한을 포함한 생·화학 무기 생산 가능 국가들에 대해 면밀한 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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