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비난한 것은 무엇보다 향후 북미관계를 재설정하는데 있어 기선잡기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북미 대화를 원하고 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지나치게 비밀스럽다'는 등의 부시 대통령 발언에 대해 `경솔한 언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와 외교 분석가들은 미국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최근 북미대화의 책임론이 거론되자 북미관계 경색의 책임이 미국에 있고 북미대화는 기존 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한번 분명히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한측의 담화 속에 '최소한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시기에 취했던 입장수준에서 (북미대화가)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이 표명된 것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이미 명백히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며 미국과도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입장'이라고 북미대화의 문은 열어놓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이번 북측의 담화는 미국이 제시한 핵.미사일.재래식군비 등 3대 의제 대신 북미대화 재개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과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합의 사항의 이행 등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북한은 '부시 행정부에 의하여 조성되고 있는 정세가 바로 북남 사이에 합의된 사항들의 이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남북관계 정체의 책임도 거듭 미국측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향후 북미대화의 전망은 당분간 어두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는 북측의 비난에 앞서 이날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섰는데, 그 이전 정부의 입장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것(북한측 요구)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지적, 북측 주장과는 상반된 논리를 전개했다.

이와 함께 9.11테러와 그에 따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이 이어지면서 이 부분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이나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 모자가 씌워진 북한 모두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가 곤란한 상황도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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