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한 게 거의 확실한 것 같다고 국가정보원이 1일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에게 보고했다. 국정원은 지난 2월 25일 정보위에서 북한 정권이 '3대(代) 세습'으로 갈 것 같다고 보고했었다.

북한은 후계자 선정 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여러 사전 포석(布石)을 해 왔다. 김정일의 67회 생일인 2월 16일 노동신문 사설은 "백두 혈통의 계승 속에 주체 혁명의 양양한 전도가 있다"며 세습을 기정사실로 예고했었다. 2월 11일 군 지도부 개편, 3월 8일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이어 4월 9일 김정일 3기 체제 출범과 함께 헌법을 개정했다. 이 같은 정치일정과 병행하여 4월 5일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런 모든 움직임은 후계구도 가시화(可視化)를 위한 체제 결속과 주민들의 충성심 결집이라는 목적에 맞춰져 있다.

김정일은 32세이던 1974년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내부적으로 충성맹세를 받기 시작한 이후 20년간의 권력 승계 준비 끝에 1994년 김일성의 사망으로 부자(父子) 승계를 이루었다. 지금 26세인 김정운은 앞으로 김정일보다 젊은 나이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될 것이다.

권력 세습은 봉건시대의 유물이다. 공산주의는 이런 봉건시대의 극복을 이념의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북한은 '혁명의 전통을 대(代)를 이어 지킨다' '우리식(式) 사회주의' 등의 구호로 봉건적 권력세습을 통해서만 혁명의 정통성이 확립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이런 비(非)이성적 집단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북한은 대내 결속을 위해 대외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가령 지난 2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김영춘은 1990년대 중반 이래 각종 도발을 주도해온 대표적 강경파로 꼽힌다. 1998년 동해 잠수정 침투와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1999년 제1차 연평과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2006년 대포동 2호 발사와 1차 핵실험 등이 모두 그가 총참모장을 맡고 있을 때 일어났다.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비할 일이다.

중기적으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호의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핵을 포기하며 개방으로 나올 때 적극 지원하겠다는 '비핵, 개방, 3000' 구상은 전제부터 현실과 맞지 않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게 날뛰는 비이성적 집단의 고삐를 잡으려면 어떻게 강압과 유인(誘因)을 조합해 정책을 만들어야 할지 새 모색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김정일 이후 김정운으로 세습이 이뤄지는 과정과 그 이후에 올 수 있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붕괴의 과정에서 민족 전체에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김씨 왕조(王朝) 문제를 안고 고심(苦心)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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