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제공되는 국제 인도지원 식량의 ‘전용’ 의혹을 둘러싼 유엔특별보고관과 세계식량계획(WFP) 및 북한 당국의 논란이 유엔총회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일 유엔인권위원회의 식량권(식량권) 담당 특별보고관인 장 지글러에게 주(주)제네바 대표부 명의로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히고 ‘식량전용’ 대목의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캐서린 베르티니 WFP 사무총장은 지난 9월 21일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서한을 발송, 지글러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각별한 관심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북한측 항의 서한은 “식량배급의 투명성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많은 정부 대표단과 민간사절단에 의해 객관적으로 검증됐다”며 현재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엔기구와 비정부기구(NGO)들의 식량 전용 의혹 부인과 삭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엔총회 보고서에 문제의 내용을 삽입한 것은 “다시 한번 북한을 모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최근 중국을 거쳐 남북한을 방문했던 베르티니 사무총장은 아난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총회 보고서에 WFP와 북한내 NGO들의 입장이 반영됐으나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북한에서 철수한 일부 NGO의 주장에 근거한 ‘대규모 식량 전용 의혹’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북한과 WFP사무총장의 항의서한은 “유엔 특별보고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면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자신의 소속 상관인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HR)에게 북한과 WFP의 항의서한 접수 사실을 전하는 한편, 아난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포함한 유엔총회 차원의 대응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시의회 의원을 지낸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11월 8일 유엔총회에서 식량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지난 4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1990년대 들어 심각한 기아에 빠져 있는 북한을 위해 WFP와 여러 NGO들이 엄청난 노력을 경주해왔으나 대북 지원식량의 대부분이 군부와 정보기관, 정부에 의해 전용되고 있다는 것이 점차 확실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대북 식량지원 관련 대목은 유엔인권위와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심의과정을 거쳐 원안대로 통과돼 아난 사무총장 명의로 유엔총회 문서로 배포됐다.

지글러 특별보고관은 유엔총회 보고서에서 WFP의 삭제요청과 이에 대한 자신의 회신 등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대북 원조가 정부에 의해 전용되고 있다는 일부 NGO들의 우려를 주목한다”고 전용 의혹을 제기했다.

유엔인권위는 지난 46차 회의의 결의를 통해 전세계 기아와 인권문제를 전담할 특별보고관을 두기로 했으며 이 결의에 의해 지글러는 지난해 9월 임기 3년의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됐다.

한편 기아퇴치운동(ACF), 세계의사회(M.M), 국경없는 의사회(MSM), CARE, OXFAM 등은 “식량전용의 공범자가 되기보다는 북한으로부터 철수를 선택했다”며 WFP측의 설명과는 전혀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스위스 언론은 보도한 바 있다.
/ 제네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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