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서울 강남구 논현동 ‘탈북자의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약칭 시민연대) 사무실에 탈북자 박모(38)씨가 찾아왔다.

벌목공으로 러시아에 끌려가 일하던 중 지난 95년 단신 탈출해 한국으로 온 박씨는 그간 번번이 사업에 실패,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 등 모든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 박씨는 시민연대 관계자들에게 “남쪽 사람들에게 계속 이용당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남한 생활에서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보다 울면서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납북자가족모임’ ‘탈북난민보호운동’ 등 17개 탈북자 관련 단체가 모여 만든 시민연대는 지난 5일 사무실 한 귀퉁이에 ‘탈북인 고충처리 상담소’를 열었다. 하루 평균 2~3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못 살겠다”고 호소해오자, 아예 이들의 하소연을 따로 들어줄 창구를 만든 것이다.

탈북자들은 남북한 간의 사소한 문화적인 차이에서도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너무 창피해서’ 밖에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올해 초 탈북한 강모(30)씨는 전기를 아끼려고 냉장고 전기코드를 뽑아 놓았다가 음식이 상하는 낭패를 보았고, 또 다른 탈북자 김모(여·28)씨는 옷가지 두어 벌을 빨기 위해 세탁기 안에 세제 한 통을 전부 넣었다가 옷을 망치기도 했다. 또 한 출판사에 일자리를 구했던 윤모(42)씨는 월급 명세서를 받아들고 사장에게 “왜 돈을 떼어 먹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세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연대 대표 이서(47) 목사는 “인간적인 정을 그리워하는 탈북자들에게 상담소가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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