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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북, 선의의 체제경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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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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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4강과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의 기존의 논의구조를 벗어나, 남·북한 간의 관계변화가 동북아 주변국가들의 국가이익과 외교전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큰 의미를 갖는다. 바꾸어 말하면 종속변수였던 남북관계를 독립변수로 전환시킨 쾌거라 할 수 있다.

남북 정상의 성공적 만남은 남·북한 사회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독립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공동선언으로 남·북한은 단절과 적대관계로부터 교류 협력과 공존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남·북한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재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공동선언 이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상호비방의 구호와 선전이 멈추었다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화공존의 선언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체제 우월성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남북은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선전과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의의 자유경쟁을 통해서 현실로 보여줘야 한다. 본격적인 체제경쟁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체제경쟁이 남·북한 서로를 대상으로 하는 체제 우월의 경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보편적인 민주적 가치의 창달과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인권과 복지, 경제적 풍요와 환경보존, 민족문화의 전승과 복원 등의 가치를 더욱 확보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 경쟁이다. 서로의 좋은 점을 자율적으로 배우고 닮아가는 것이 체제 경쟁의 본질이며 통일의 지름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남·북한 간 평화 공존과 교류 협력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평상심으로 돌아와 우리 주변의 문제를 차분히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협력과 화해 무드가 우리 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고쳐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을 개혁하고 발전시켜 우리의 모습을 북한의 동족에게 당당하게 보여줘야 한다.

남북경협의 흥분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늦추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찾기 위해 천민자본주의적 요소는 제거되어야 하며, 경영과 시장원리의 효율성이 사회복지로 이어지는 제도적 장치도 보완되어야 한다. 의약분업 등 사회 각 분야의 이익분쟁이 충분한 의견조율과 조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이며 강압적 방법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의 정치체제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나가면서 개혁과제를 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 역시 우리 사회의 강점은 다양성과 투명성이다. 총화 단결의 구호가 다양성의 인정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독재와 강압으로 흐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남북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여러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 좋다.

남북정상회담이 총선 전에 있었더라면 여당이 압승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풍자한 만평이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총선 후 여야의 공조가 절실한 가운데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이었기에 성공적일 수 있었으며, 야당의 적절한 견제하에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가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상호주의, 주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문제 등이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다. 강요나 몰아붙이기 식의 정치행태는 남·북한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여·야 간에도 적절치 않다. 정치권은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의 상황변화를 우리 정치행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독립변수로 삼는 동시에, 우리의 정치행태 변화가 남·북한 관계 변화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독립변수임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의 화해와 협력의 정신이 우리 정치권에 그대로 흡수되어 ‘통 큰 정치’가 실현되길 기대한다.

/ 이 정 희 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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