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잰 숄티
(Suzanne Scholte )

디펜스 포럼은 지난 몇달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했다. 디펜스 포럼 재단은 인류 공통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교육 재단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구 소련, 쿠바, 중국,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망명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서도록 주선해 왔다. 우리가 황씨를 초청하는 것은 이 같은 활동의 일환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황씨를 초청하는 것이 한국의 햇볕정책과 관련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황씨를 초청한 것은 (햇볕정책이 추진되기 전인) 1997년 황씨가 한국에 망명한 직후부터이다.

우리가 초청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었지만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유’를 찾아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신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망명의 길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이 간단한 이상을 향해, 자신이 알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생 경로를 완전히 바꾸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들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그들로 하여금 거짓 삶을 살 수 없게 하고 자유를 향해 목말라하게 만든 ‘양심’이었다. 디펜스 포럼이 미국 의회에까지 안내했던 망명 인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망명 결심을 굳히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신들이 알아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경험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어떤 사람은 어느날 남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남한 방송이 자신의 기존 관념을 모두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됐다. 쿠바의 한 망명자는 아들의 병이 계기가 됐다. 그는 원래 공군 조종사로 조국의 은총을 입어 소련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는 특전을 누릴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민주국가 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조금씩 알게 됐고, 미국에 대한 증오심도 서서히 사그라지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심한 병에 걸렸는데, 소련의 무너진 의료체계로는 도저히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쿠바로 귀국한 뒤 미그기를 몰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소련의 한 고급 장교가 망명을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일반 주택에 있는 수영장들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풍족하게 살 뿐 나머지는 비참한 가난 속에 사는 것으로 배웠고, 자유와 자본주의를 증오하도록 길러졌다. 그는 스파이로 미국에 와서야, 자본주의 사회에는 중산층이 있고 그들 정도면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보고 미국으로 망명을 결심한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그들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일선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에게 항의하고, 미국 대학생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미군의 준비에 항의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들 망명 인사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 대한 항공기 자살 테러는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경고를 일깨워준다. 세상에는 자유와 인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는 정권들과 집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르고서는 그들로부터 우리의 자유와 인권을 지킬 수 없다. 황씨는 북한을 탈출한 최고위 인사다. 그는 자유와 인권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보았고 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 알고 있던 것 모두를 포기하고 중대한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가 잘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유’를 향해 망명했다. 우리는 단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로부터 직접 듣기를 원할 뿐이다.
/ 미국 디펜스 포럼 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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