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협력 분야는 이산가족 문제와 함께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가장 먼저 가시화될 분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간 경협 활성화에 필요한 투자보장 등 제도적 장치의 정비와 대북 투자여건 개선을 기대했던 경제계는 포괄적으로 공동선언에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라고 언급되고 넘어가자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배경에 궁금증을 보이고 있다. 비록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경의선 복원 등 몇 가지 가시적인 약속도 있었지만, 경협 재원조달의 문제, 상호주의 적용 방식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본사는 19일 오전 조동호(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장과 LG경제연구원 양문수(양문수) 연구위원의 대담을 통해 이 문제를 점검해 보았다.

▲조동호=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경제부문 공동선언은 별 내용이 없었다. 물론 남북 경협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경협을 당국간 차원으로 격상시킨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이 없어 파급효과 측면에서는 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못 미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언제, 어떻게 한다는 구체적인 합의내용까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느낌이다.

▲양문수=조 박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공동선언의 4번째 조항을 보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라는 조항이 나오는데 이는 92년 2월에 발효된 기본합의서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이번 선언은 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한 측면이 있다. 88년 간접교역부터 시작된 남북경협은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선언은 남북 경협을 정부 차원으로 한 단계 승격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추진될 첫 남북경협 사업의 하나로 경의선 복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경의선 연결은 기업 입장에선 물류비를 현재의 3분의 1로 떨어뜨릴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이다. 이런 대화가 축적되면 지금보다 경협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남북 대화의 연속성은 확보된 것이 아닌가 싶다. 경협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장래를 다소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남북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세부적인 것까지 합의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가 있으니까 경협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을 복원한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남북 경협이 크게 진전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민간 기업에 대한 이야기다. 남한 기업들이 진출을 희망하는 지역에 전력과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이야기가 나와야 우리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지난 13년간의 경험을 보면 본격적인 대북 투자는 현대그룹의 금강산 투자와 대우그룹의 남포공단 투자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남북 경협이 이처럼 지지부진했던 것은 북한 투자 자체의 리스크와 취약한 인프라·내수시장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일반 국민들이 보는 것처럼 단번에 경협이 확대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양=물론 정상회담을 통해 앞으로 남북경협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당국간 후속회담을 통해 순조로운 경협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상회담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조=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개방·개혁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체제변화의 두려움 때문에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 왔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그는 개혁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넓은 개방이 북한체제에 필요하다는 정책을 선택했다. 북한보다 먼저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베트남이 갖는 북한과의 차이는 개방과 개혁을 통한 다소간의 체제 불안이 발생해도 자신들을 흡수 통일할 상대방이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개방을 앞두고 정치적 자신감과 함께 체제유지에 대한 외부의 보장이 필요한 상태다. 그동안 북한은 북·미, 북·일 관계의 개선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공존을 기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개방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의 마지막 부분이다.

북한은 이번에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면적이고 급속한 개방보다는 원하는 분야에 대해서 점진적이고 제한적인 개방을 택할 것이다. 개방으로 체제에 악영향이 온다 싶으면 사상교육을 강화할 것이고, 잠시 멈췄다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개방을 추진하는 식이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의지보다는 개방으로 가기 위한 정치적 기반조성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양=북한이 현재 개방으로 나가고는 있지만 중국 모델에 비해서는 제한적인 면이 많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체제 안정과 경제난 해소라는 두 가지 딜레마 속에서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난 해소만을 위해 노력한다면 바로 체제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관계 있다. 북한 주민들은 현재의 생활이 어렵고 힘든 것이 통일이 안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남한에서 일정 정도 지원 받는 것을 통일이라는 명분 속에 녹이며, 체제안전의 위협도 줄여가는 방법이다. 북한은 완급을 조절하며 경협을 확대하다 돌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다소 쉬기도 하는 식으로 개방을 해 나갈 것이다.

▲조=이번에 우리 정부는 ‘신축적 상호주의’ ‘유연한 상호주의’ ‘시차를 두는 상호주의’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YS 때처럼 ‘쌀주고 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남북경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호주의를 아예 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상호주의의 반대급부 개념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회담 전에 경협과 이산가족 문제의 연계 여부가 논란이 됐는데, 사실 쌀과 이산가족을 연계시킬 경우, 이산가족 1명에게 쌀을 얼마나 줘야 하는가 하는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사람의 문제를 물자지원과 연계시키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진정 남북화해를 이룰 생각이 있다면 먼저 베풀면서 시작해야 한다. 일방적 지원에 대한 비판여론이 신경쓰인다면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상호주의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안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북 경협이라면 흔히 북한에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이미지에 우리는 젖어 있다. 우리 사회에 남북 경협을 둘러싼 내부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협을 단순한 지원으로 생각하는 보수 세력을 설득하기 위해 나온 이야기가 상호주의다. 현재 사용되는 상호주의는 단순히 물자로만 주고 받자는 것도 아니고, 또 동시에 주고 받자는 것도 아닌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상호 교류하자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국내 기업들은 남북 간의 전쟁 발발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은 그 점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다. 경협 환경이 좋아지면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요건이 좋아지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국내 기업에 혜택이 돌아온다. 이런 측면도 상호주의의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

▲조=경협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자 일부에서는 북한의 저임·고급 노동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북한 노동력이 저렴하다는 것은 남한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 뿐이다. 북한의 최저임금은 나진·선봉지역의 경우 월 80달러, 기타지역의 경우 월 110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대략 점심수당 등을 포함해 월 200달러 내외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임가공 투자를 위해 진출한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반드시 싸다고만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북한 진출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내부의 생산성 격차도 매우 심하다.

▲양=북한의 노동수준은 중국이나 동남아보다는 우수한 편이다. 북한 당국은 위탁가공 업체에 직원을 파견할 때 최우수 직원을 보낸다. 일하는 입장에서도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위탁가공업체나 합영기업에서 일하는 편이 낫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인센티브도 일부 있어 더욱 열심히 일한다.

▲조=정부 차원의 경협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정부는 이제 생각을 바꿔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대북 투자 항목을 먼저 정해놓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어떤 식으로 조달해보겠다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의 총액을 먼저 정하고 대북 투자사업의 우선 순위를 정해 재원의 범위 내에서 집행해야 한다. 북한에 남한의 경제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양=국제 금융기구를 통한 대북 투자자금 조달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미국의 동의가 필요한 문제다.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도 당분간은 가능성이 없다. 결국 우리 정부가 재원을 조달해 투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 경기 하강 논쟁이 있고 금융 구조조정에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북 경협을 위해 얼마만큼의 재원을 조성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의 재원 조달 능력과 의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대북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조=아무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중요한 대북 경협사업이지만 정부가 민간기업에 이를 빌미로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하는 일은 있어서 안된다. 대북사업과 관련해 기업은 정부에 자금과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대북 진출 정보는 먼저 진출한 기업들이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이므로 정부가 다른 기업에 그냥 넘겨줄 수는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기업집단 연합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협회가 남북 경협에 경험이 있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신 대북 진출 노하우를 받아 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부가 대북사업을 한다고 해서 한계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은행 보증을 알선하는 일을 해선 안된다. 대북 사업체에 대한 금융·세제상의 지원도 국내 기업들과의 형평성 문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업들이 국내 문제는 정부의 간섭을 반대하며 대북사업만은 ‘과당경쟁을 막아달라’ ‘세제 지원을 해달라’며 보채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정한 룰이 대북투자에 적용되도록 감시하는데 그쳐야 한다.

▲양=남북 경협의 실질적인 주체는 민간기업이다. 정부와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경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 조성에 전념해야 한다. 경협이 활성화되려면 당분간 정부가 자금조달에서 자금배분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또 다른 정경유착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조=정부에 과도한 지원을 요청하는 민간 경협 사업은 대부분 사업성이 없는 사업들이다. 대북 경협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허황된 명분을 좇아 수익성 없는 사업에 매달리지 말고 실속있는 사업에 착실히 매진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들의 대북 진출은 현재까지 동종 업체들의 공동 진출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임금 때문에 고전하던 업종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기타 국가로 이전된 상황이어서 지금 북한 진출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지원했던 그런 감각으로 대북 진출 중소기업을 따로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리=조희천기자 hc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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