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나라당은 대북 쌀지원 문제와 관련, 다소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지난 20일 별 조건을 달지 않은 채 200만섬을 인도적으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던 데서, 이날은 ‘200만섬으로 정한 것이 아니고 북한의 절대부족량을 계산해서, 그것도 주민에게 제공되는지 여부를 감시하면서 제공한다’라는 조건을 달았다.

◆ 곤혹스런 한나라당
보수적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용갑 의원이 지도부를 격렬하게 성토한 개인성명에 공감을 표시하는 의원들도 많았다. 24일 총재단회의에서 조건부 지원으로 방침이 수정됐으나 지도부에 대한 의아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농민표 얻으려다 보수표 다 잃을 것이란 말이 많다”고 했고, 다른 한 의원은 “대북 퍼주기를 비난할 때는 언제고, 지금와서 똑같은 짓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했다.

총재단회의에서도 대부분의 부총재들은 ‘무조건 지원’에 대한 성토에 나서, 이회창 총재와 주요 당직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부영 부총재만 거의 유일하게 “국내 쌀값 안정과 쌀 보관비 절약을 위해 200만섬 정도를 북한에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 총재를 거들었을 뿐이다.

최병렬 부총재는 “쌀 지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당은 대북지원을 하더라도 분배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고,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무조건 지원 방침이 도대체 어떻게 결정된 것이냐”고 했다.

양정규 박희태 부총재 등도 “총재단회의나 의원총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문제”라고 했고, 강재섭 부총재는 “대북지원에 대한 국회 동의가 우리 당이 주장해온 일관된 원칙”이라며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순봉 부총재도 “한나라당마저 대북 퍼주기를 하려 한다는 여론의 질타에 대해서는 이를 발표한 정책위의장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일부 부총재들은 김만제 정책위의장에 대한 책임론까지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급히 진화에 나서 “쌀 재고 과잉 해결 차원에서 대북 쌀지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정책위에서 우리 당의 일관된 대북지원 기본원칙은 생략한 채 구체적인 쌀지원 규모까지 발표해 문제가 파생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여전한 당내 의문
한나라당 다수 의원들은 “앞으로 현 정권의 퍼주기 햇볕정책을 비판할 근거가 없어졌다”고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다. 한 의원은 “당 지지자들로부터 격한 비난이 쏟아져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권철현 대변인은 “한나라당 대북정책이 바뀌거나 농민표를 의식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고 발표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결정이 전격적으로 내려졌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 총재가 농촌 마을을 다니면서 농민들의 불만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대북문제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했던 것 아니냐”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당초 어떻게 해서 ‘200만섬’이라는 숫자가 나왔느냐는 의문도 그대로 남아있다. 200만섬 부분은 여야 간에 호흡이 일치했다.

24일 한나라당 김만제 의장 200만섬 발표 당일 김대중 대통령 200만섬 화답 24일 정부의 200만섬 추가 수매방침 확정발표 등 모두 200만섬을 전제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당내에 여야 지도부 사전 교감설도 돌고 있다.

처음 200만섬을 발표한 김 의장은 “200만섬은 농민들이 늘 주장하던 숫자”라며 “우리가 발표하자 여당이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바로 받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당초 “북한에 재고미를 주는 것일 뿐 수매량이 늘어나 돈이 추가로 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200만섬을 추가로 수매하기로 결정, 결국 한나라당 대북지원은 ‘6000억원(5억달러) 현금’이 그대로 들어가는 결과와 다를 것이 없게 됐다.
/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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