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상(金熙相)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사상 초유의 항공기 자살테러 이후, 테러는 더이상 특수한 시설 또는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만 가해지는 위협이 아님이 입증됐다. 나와 내 가족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서나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끔찍하다.

테러에 관한 한 한국은 특수한 상황이다. 전술적·작전적·전략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다양한 테러 능력을 갖추고 있는 북한과 상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수없이 많은 테러를 자행해 왔으면서도 한 번도 사과하거나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북한 최고위층의 집중적 관심하에 잘 정비되고 훈련된, 그리고 적지 않은 실전경험까지 두루 갖춘 저들의 다양한 특수부대요원들은 모두 10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는데, 거의가 그 나름의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도로 전문화된 테러집단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테러에 대한 취약성이 너무 크고 광범하다. 국민의 의식부터가 그렇다. 그동안 수없이 당해왔으면서도 여전히 테러의 위협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 밀집된 인구, 집중된 교통·통신시설, 수많은 정수장이나 여러 가지 가스 저장시설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취약 시설들이 곳곳에 함부로 산재해 있고, 테러에 대한 대비체제도 잘 정비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대(對)테러부대의 훈련수준은 세계적이라 할 수 있을 듯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협의 규모와 성격에 비교하면 이 작고 부분적인 능력만으로는 너무도 미흡하다. 이번 항공기 자살 테러에서 보았듯이 한국에서의 테러는 단순한 사회범죄나 군 전투행위라기보다는 전쟁적 성격에 가깝다.

전투는 군인의 과업이지만 전쟁은 국민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다. 테러와의 싸움은 흔히 ‘잔디 연병장에 뛰는 벼룩·이 잡기’에 비유된다. 국가의 통합적 노력과 온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대 테러 군사작전조차도 쉽게 성공할 수가 없다.

테러의 예방이나 피해의 최소화 그리고 신속한 사후처리 등 모든 단계에서 정부 차원에서 나라에 관련련된 모든 역량을 입체적·통합적·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온 국민이 스스로의 불편을 인내하고 희생하며 적극 참여하는 범국민적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효과적인 작전의 수행과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력과 국방력을 비롯한 국가의 전체 안보역량을 테러대비 위주로 전환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작전의 성격상 지역별로 그리고 한시적으로 국가의 모든 대 테러 역량을 효과적으로 잘 협조·통제·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제 ‘테러 방지법’을 제정하고 ‘대 테러 센터’를 운영한다고 하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보다 내실 있고 완벽한 체제를 갖추기를 기대해 본다. 차제에 관련된 전투력의 규모를 적절히 확충하고 편성과 장비도 좀더 현대화하며, 특히 정보력을 증강하고 운용체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테러를 자행할 의지가 있건 없건, 테러는 저들에게 여전히, 아니 더욱더 효과적인 대남 공격수단의 하나가 되어 있으며, 또한 이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 테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도 일찍이 ‘적이 공격해 오지 않을 것임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의 방비가 굳건함을 믿으라’고 권하지 않았던가. 물론 햇볕정책·포용정책도 대단히 중요하고 계속되어야 할 과업이겠지만 이와 같은 튼튼한 국가안보 태세의 강화를 위한 노력도 한 치의 빈틈없이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테러에 대한 대비는 국가 안보의 필요조건이자 화해 협력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미 RAND연구소 선임 객원연구원·육군중장(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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