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로부터 이날이 오면 우리 선조들은 가을걷이를 앞두고 풍년을 즐기는 행사를 하였으며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를 찾았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의 한반도 분단으로 남북한의 이러한 추석 전통마저 달라졌으나 성묘를 비롯해 일부 문화는 북한에서도 여전히 계승돼 오고 있다.

민족 최대 명절이었던 추석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생일 등에 밀려 일반 민속명절로 퇴색되기는 했지만 북한 주민들도 해마다 추석날 만큼은 부모의 묘를 돌보고 제사도 지낸다.

북한당국은 1960년대 말부터 김 주석의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봉건유습 타파와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외치면서 조상숭배와 민간풍속 대부분을 봉건적 잔재로 매도했지만 추석날 성묘문화는 그대로 유지시켰다.

일부에서는 북한당국이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성묘를 금지해 오다가 남북대화가 시작된 지난 72년 이후 부활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성묘가 금지된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3일간 연휴를 보내는 남한과 달리 추석 당일만 공휴일로 돼 있다.

북한 주민들은 추석날 아침 일찍 준비한 음식과 낫 등을 가지고 조상의 묘를 찾아 떠난다. 남한에서는 많은 가정이 집에서 차례를 먼저 지내지만 북한에서는 곧바로 성묘를 간다.

묘에 도착하면 가져온 낫 등으로 벌초를 하고 상돌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술을 부은 후 묵례를 한다.

북한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절하는 문화가 지난 80년대 들어 조금씩 부활되고 있으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북한 출판물들은 묵례나 서서 깊숙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을 `서서하는 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묵례 후에는 빈 접시에 술, 밥, 국, 반찬 등을 조금씩 담아 묘 주변 땅속에 묻은 뒤에 온 가족이 상석 주위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추석날 성묘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고 벌을 받는다면서 어떻게든 거르지 않았던 성묘 풍속도 90년대 중반 들어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또 평양에 산소를 둔 지방주민들은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기 어려워 성묘를 포기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당국은 평양시 교외의 공동묘지에 가는 시민들을 위해 추석날 오전 5시30분께부터 오후 10시께까지 궤도전차, 버스, 지하철 등을 운행하고 묘지가 집중돼 있는 지역에는 별도로 전용 교통편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림없으며 교통편이 열악한 지방에서는 걸어서 묘지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 주민들은 복잡한 추석날을 피해 1주일 정도 먼저 성묘를 다녀오기도 한다.

평양시의 주요 공동묘지는 중화군, 룡성구역, 순안구역 등에 있으며 지방의 공동묘지는 교통편 등이 감안돼 시나 군내 구역안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1∼4시간 정도 걸으면 도달할 수 있다.

한편 북한 언론들은 추석날 주민들이 김 주석의 동상이나 김 총비서 등의 초상화 앞에서 인사를 하고난 뒤 성묘를 간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당ㆍ정ㆍ군 간부 등 일부 선택된 주민들에 국한되며 북한당국도 이를 강요하지는 않고 있다.

추석날 강강술래, 씨름대회, 활쏘기대회, 농악 등 언론에 소개되는 민속놀이 모습 역시 일부 주민들을 동원한 행사용에 불과하다고 탈북자들은 주장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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