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열리는 남북장관급회담이다. 이 정부로서는 기다려왔던 대화의 기회이기도 하며, 이를 계기로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함직하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남북공동으로 반(反)테러 선언을 추진토록 지시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북한과 함께 반테러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회담을 방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남쪽으로서는 과거 북한이 저지른 각종 테러 사건에 대한 북측의 태도 표명 내지 사과 없이 북측과 공동으로 반테러를 선언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혹자는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라는 어거지 논리를 펴겠지만 「과거는 과거」라면 우리가 일본의 과거의 잘못을 거론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북측에 전제적 「요구」 없이 무턱대고 반테러를 논의할 수 없다. 반테러를 논의하기로 할 양이면 KAL폭파사건, 아웅산테러사건, 요도호 납치사건,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조선일보에 대한 각종 테러협박 등에 어떤 「결말」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이런 사건에 대한 사과를 선행조건으로 내세울 때 북한이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에 굳이 반테러 문제를 꺼낸다는 것은 모처럼 열리는 남북대화의 길에 스스로 암초를 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 우리가 김 대통령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어째서 이처럼 전제가 있고 타협이 어려운 문제를 회담에 앞서 꺼내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이번 남북회담에서 반테러 문제를 꺼내지 않는 것이 회담의 장래를 위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양새」보다는 기왕에 논의되고 아직 구체적 방향이 모색되지 않는 남북 간의 현안에 치중하는 것이 회담의 불씨를 살려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장관급 회담 정례화와 그동안 합의는 했으나 실천되지 못한 경의선 북측부분 복원,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 금강산 육로관광, 개성공단, 4대 경제협정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것과 관련해 우리는 이 정권의 「인기성 발상」에 깊은 우려를 갖게 된다. 하나씩 실무적 현실적 문제들을 심도있게 개선해나가기보다는 속들여다 보이는 인기 품목에 착안하는 습성에 낙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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