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가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림꺽정’ ‘홍길동’ ‘사랑 사랑 내 사랑’ 같은 영화들이 방송을 탄 데 이어 ‘불가사리’는 처음으로 극장 상영을 추진하고 있다. 통일부의 북한영화 정기 상영회나 텔레비전의 북한소개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이미 북한영화는 곁에 왔다고 할 정도다.

북한영화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선전의 수단이다. 분단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할은 그대로다.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 지도자를 위한 헌신적 충성을 유도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자 가치다. 연간 20편 내외의 극영화를 제작하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교육용 기록영화나 과학영화 등을 제작하는 기록과학영화 촬영소같은 일체의 영화시설을 정부가 운영하며, 유능한 배우나 감독을 선정, 인민배우·공훈배우로 대우하는 것은 영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한 ‘내 고향’(1949)을 사실상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북한 영화는 가부장적 권위에 바탕을 둔 스토리 중심의 멜러 드라마라는 기본 틀을 충실하게 지킨다. 지도자의 현명한 영도와 세심한 배려, 인민의 절대적 존경과 충성은 자상하면서도 엄한 아버지와 성실하며 의젓한 자식 같은 관계를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예외없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며 지도자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를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바탕이다. 또한 어떤 영화든 설명적이다. ‘이러저러한 일이 생겼는데 이렇게저렇게 해서 그것을 해결하고 만사가 순조롭게 되었더라’는 식이다. 상황이나 감정의 표현도 대부분 대사로 처리한다. 영화의 주제도 그 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강조된다. 연출보다 시나리오가 더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70년대까지 북한영화의 주조는 항일투쟁 역사나 이념선전, 권력기반 강화 등을 강조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청춘남녀의 사랑이나 도시와 농촌간의 갈등, 무능과 무사안일을 조장하는 관료주의적 타성 등의 문제점을 다루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춘향전’ 전·후편(1980)이나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같은 영화들이 고전에서 사랑을 끌어낸 경우이고 ‘내가 사랑하는 처녀’(1992)나 ‘자매들’(1994)은 계층적 신분이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난 ‘건전한 사랑’의 현대적 모습을 제시한 경우에 든다. 딸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도시로 시집보내려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서두른 결혼’·1989)이나 좀더 편하게 사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딸과 나보다는 사회를 먼저 생각하며 필요하다면 희생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와의 갈등(‘아버지의 마음’· 1990), 농촌에서 살자는 남편과 도시에서 살겠다는 아내가 다투다가 결국 별거까지 이르는 부부갈등(‘주인된 마음’·1997)은 북한 사회도 결국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영화가 그것을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한 영화의 사이는 멀다. 이념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스토리와 주제 중심의 북한영화의 설명적 구성과,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와 빠른 템포를 앞세운 오락적 가치에 익숙한 우리의 영화보기가 갖는 현실적 거리 탓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다. 남북한 영화 교류의 성패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영화분야의 학술적 교류나 공동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대목이다.

/ 조희문·영화평론가·상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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