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원 높은반의 연구모임 장면. 유치원 혁명역사연구실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경대 김일성 생가 등을 세트로 제작해 교육하므로 일반 연구실의 내부 모습과는 다르다.

북한 전역의 마을과 학교, 공장, 기업소, 군대 등에는 빠짐없이 "김일성혁명력사연구실"이 마련돼 있다. 주민들은 줄여 ‘연구실’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신성한 의식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연구실에는 맨발로는 들어갈 수 없다. 흰 양말을 신고 단정하게 들어가야 하지만, 정 없는 경우에는 색깔있는 양말이라도 신어야만 한다. 교시내용을 받아적는 "연구록"도 필수품이다. 양말과 연구록이 없어 못 들어가는 경우 학생들은 청소 등의 벌을 받고, 일반인들도 조직생활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런 "연구모임"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지휘에 따라 각급 조직에서 주도한다. 가령 인민학교에서는 반장 대신 정치적으로 학급을 대표하는 소년단의 분단위원장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연구모임을 지도하는 식이다. 가정주부들도 여맹조직에 속해 있으므로 제외될 수 없다.

연구실에 들어가서는 "김일성동지의 고매한 덕성과 인민적 사업작풍, 혁명전통을 체현하는" 학습을 받는다. 1~2시간 지속되는 연구모임은 엄숙하지만 지루하므로 짓궂은 이들은 책상 곳곳에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연구실 "관리자"는 조직생활에 충실하고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여성이 주로 뽑힌다. 조직의 신뢰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긍지는 높지만,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산천초목도 떨게 하는 "유일사상10대원칙"에 의거 "김일성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3조6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 밤이면 행여 연구실내의 석고상이 떨어지거나 금이라도 갈까봐 발을 동동 구르며 달려가기 일쑤다.

커튼을 달고 융단을 까는 것은 연구실이 속한 관할 조직원들의 몫이다. 건물과 필수적으로 비치되는 물품을 뺀 장식품은 주민들이 사재를 털어 장만하는 것이다.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 대신 돈을 가진 북송 재일교포들이 화려하고 값비싼 커튼이나 융단, 꽃 등을 희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충성심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의 삶의 공간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갈하며 고급스러운 곳은 바로 이 연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주민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던 90년대 연간에도 이런 연구모임은 지속됐다. 작년 초 평양을 다녀온 한 조선족 학자는 "배고픔 속에서도 학습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전한다. 오히려 이런 모임은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99년에는 전국 학교에서 일제히 "김정숙(김정일의 어머니) 어머님 혁명활동연구실"도 개관했다.
/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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