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리아 페스티벌’은 끝났다. ”(후카가와 유키코·아오야마대학 교수)

남북정상회담의 축제 분위기에서 깨어난 것은 일본이 한발 빨랐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부터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반도를 겨냥한 경고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한반도 열풍’이 분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신문이 연일 1면 톱이었고, 방송은 평양과 서울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쏟아냈다.

한 TV 뉴스는 남북 정상의 만찬 상차림을 재현·시식하는 극성을 피우기도 했다. 이번주 일본열도에서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두 정상이었다. 축제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5일 새벽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이 일본인의 ‘계산 본능’을 자극한 모양이다.

특히 민족자주 원칙엔 거부감 섞인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일본의 공식입장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떠들썩한 환영논평 뒤에선 남북한이 ‘배타적 민족주의로 치달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으로선 한국이 3국공조 대열에서 이탈하는 상황을 가장 걱정한다.

북한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있었다는 점은 일본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방국의 ‘오해’를 살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는 게 보수그룹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본심인 듯하다.

이를 테면 북한의 외세배격 논리를 수용한 것은 “남측이 당한 꼴”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한 신문은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8월 15일로 잡은 데 대한 일본정부 관리의 불만을 전했다. 반일(반일)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의 문제 제기엔 지나친 점도 많지만 주변국이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중요한 대목이다.

평양에서 돌아온 김 대통령에겐 우방의 불안을 달래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민족적 해결’ 원칙과 ‘국제 협조’의 현실 사이에서 고난도 곡예비행을 거듭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정훈 동경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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