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붉은기사상은 오늘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 모든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절에 혁명 선배들이 지녔던 혁명적 신념으로 무장해 수령(김정일)을 결사옹위함으로써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해나가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붉은기사상을 제기한 배경은 바로 오늘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는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1980년대 말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이어 1994년 김일성의 사망, 1995∼96년의 잇단 자연재해 등 내우외환의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체제수호를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절실히 요구됐으며, 그러한 필요성이 오늘의 상황과 유사했던 '고난의 행군'시절에 고취했던 붉은기의 상징성을 차용해 붉은기사상으로 구체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위기의식은 1990년대 이후 발표된 김정일의 논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따라서 북한은 붉은기사상을 통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에게 인고를 강요하는 동시에,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독려함으로써 당면한 체제위기를 극복해 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체제의 공식 출범이 임박하게 되자 김정일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강하기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게 된 것도 붉은기사상이 제기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이른바 유훈통치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공식 승계를 미룬채 시간을 벌어왔다. 이러한 점에서 유훈통치 기간은 사실상 죽은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통치자이고 김정일은 그의 대리인으로 역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수령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그 방법의 하나로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붉은기사상이라는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김정일에 의해 붉은기사상이 제기됐음을 강조하는 가운데, 김일성에게서 김정일에게로 우상화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온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한계상황에 다다른 오늘의 북한 사회를 추스르는데 있어서, 주체사상만을 강요하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도 붉은기사상을 제기하게 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주민들에게 오늘의 위기상황을 이해시키고 인고를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난 40여 년 동안 북한을 지배해온 주체사상이 더 이상 유용하지 못하다는 인식아래 이를 대체해 혁명과 건설을 도모할 새로운 실천이데올로기로 붉은기사상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2013-10-30 15:21:49 203.255.111.242

정치·사상

붉은기사상(붉은기철학) -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