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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화 - 김정일 우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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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0-30 14: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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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북한은 김정일에로의 권력승계를 준비하는 과정과 병행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김정일 우상화 작업을 벌여 왔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이 그에 대한 호칭 변화이다.

북한은 1974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그에 대해 '당중앙'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오다 1975년 6월 김정일의 생일을 휴무일로 공식 지정하면서부터 '유일한 지도자'라는 호칭을 등장시켰다.

1975년 10월부터는 김일성 주석 생전 그의 1977년 이후에는'당중앙'이라는 호칭과 함께 '영명하신 지도자, 존경하는 지도자,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 등의 호칭이 등장하였으나 김정일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또한 '당중앙의 불빛을 우러러' 등의 가요를 보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당중앙'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도록 하였다.

김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칭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군사위원회 위원 등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즉 1983년 2월 김 국방위원장의 41회 생일을 계기로 '영도자'란 호칭이 등장하였고 1983년 5월에는 그의 군부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목적으로 직책과는 상관없이 '최고사령관'이라고 불렀다.

1985년 2월에는 '수령'호칭이 일시 나타난 바 있으며 1986년 2월에는 '인민의 어버이' 그리고 이른바 구호문헌 발굴사업이 본격화된 이후인 1987년 2월부터는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영도자, 백두광명성, 향도성 등의 호칭이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일성과 거의 같은 형태와 수준의 호칭을 그에게 사용함으로써 그가 북한 권력의 최고 수위임을 나타내었다. 1991년 10월에는 '또 한분의 걸출한 수령' 호칭이 나타났다.

1993년 7월에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노동신문에 기고한 기명논설에서 김 국방위원장을 '탁월한 군사전략가, 강철의 영장'으로 불렀고, 1993년 8월에는 '민족의 어버이, 인민의 지도자'라는 호칭도 등장하였다. 1993년 10월에는 김정일을 '우리 아버지'라고 지칭한 2곡의 가요를 제작하여 주로 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보급하였다.

북한은 각급 학교 교과서에도 김 국방위원장을 우상화하는 내용을 수록하고, 그와 관련한 교과목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하여 청소년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인민학교 국어교과서에는 "나는 아버지 원수님에 대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뜨거운 충성심을 깊이 느꼈습니다"(인민학교 1학년 국어 '참배', p.31)라는 구절이 있으며, 고등중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아, 친애하는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동지, 그이께서 백두산에 탄생하시였다"(고등중학교 3학년 국어 '해돋이')라는 찬양이 등장한다.

각급 학교 수학과 대수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크나큰 사랑이 깃들어 있는 '은덕분교'로 인민학교 학생 165명이 견학을 갑니다. 그 가운데 3/5은 4학년생이고…"(인민학교 4학년 수학 '분수', p.160.)등으로 김정일과 관련지어 문제를 내는 방식이 쓰이고 있고, 음악 교과서에도 "온 나라 꽃봉오리 학습터 찾아 지도자 선생님을 따라 배워요"(인민학교 1학년 음악 제31과 '장자산의 학습터', p.71.)등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사가 등장한다.

북한은 또한 김정일의 '위대성'과 '빛나는 업적'을 찬양하는 책자와 문학작품 그리고 노래를 대량으로 제작해 주민들에게 보급하고, 김정일의 출생 및 성장과 관계가 있는 여러 지역을 '혁명사적지'로 조성하여 왔다. 1982년 '어은혁명사적지'를 시작으로 현재 16개가 조성되어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가 출생하였다는 백두산밀영으로, 북한은 여기에 귀틀집, 회의장소 등을 건립하여 놓고 이를 '백두산밀영 고향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의 문예출판사는 1991년 9월 김정일에 관한 전설을 모은 '백두광명성 전설집'을 발간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여기에는 김정일이 해방 후 청진시를 방문, 일본인들이 쓰던 지구의의 일본지도를 먹으로 새까맣게 칠해놓자 일본 땅에 검은 구름과 소낙비가 내렸다는 내용의 '지동이 울다'를 비롯하여 30여 편의 김정일 전설이 담겨 있다.

이 밖에도 북한은 1987년 5월부터 항일혁명투쟁 당시 빨치산 대원들이 나무 껍질을 벗겨 글을 써 넣었다는 소위 '구호나무'(구호문헌)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그 태양빛 이어갈 백두광명성", "아, 조선아 백두성 탄생을 알린다" 등의 구호가 발견되었고, '탄생' 및 '후계자로서의 위상'과 관련한 200여 가지의 김정일 칭송 문헌이 발견되었다고 선전하였다.

또한 1988년 2월 김정일의 46회 생일을 기해 일본의 한 화원 주인이 오랜 연구 끝에 재배에 성공하여 기증하였다는 베고니아과의 꽃을 '김정일화'로 명명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보급·선전하였다. 또한 백두산, 금강산 등 명산의 바위 위에는 한 글자의 길이가 수미터나 되고 글자의 깊이만 해도 1m에 이르는 김 국방위원장의 어록과 이름을 새겨 자연을 크게 훼손하면서까지 우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김정일 우상화에는 김일성 자신도 직접 참여하였다. 1992년 2월 16일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자신의 아들을 찬양하는 친필 김정일송시를 한문과 한글로 발표하였으며, 1994년 3월과 4월에는 "김정일 조직비서는 한마디로 말하여 충성의 최고 화신입니다"라고 칭찬한 것을 비롯하여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 소박하고 검소한 사람,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등으로 공개적으로 찬양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 사망 이후 맞이한 김정일의 53회 생일에 즈음하여 1995년 2월 7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1992.2.7 김일성 비준)으로 김정일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고 주민들에게 이틀간의 휴무일을 부여하는 등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앞두고 후계자로서의 상징조작을 강화하였다.

한편 북한은 1993년 1월 28일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김정일의 통치방식을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로 규정한 이래 계속해서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김정일 우상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인덕정치'의 실현을 통해 "영도자와 인민들이 사랑을 베푸는 어버이와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자식간의 혈연적 관계가 형성되었다."(노동신문, 1995.1.15 참조)고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호칭도 '친애하는 지도자'에서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로 바뀌었다. 김정일정권이 공식 출범한 이후에는 '최고사령관 동지', '장군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등의 호칭이 일반적으로 쓰인다(통일부, '2000 북한개요').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이러한 호칭의 종류가 1200가지라고 공개하면서 선군영도에 대한 호칭 120가지, 태양에 관한 호칭이 50가지가 있으며 그외에 품성, 자질, 신화적 호칭도 많이 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중앙방송, 200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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