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1997년 10월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 당의 최고 수위에 올랐다. 이듬해 9월에는 권력구조를 전면 개편, 국가의 최고 직책으로 부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재추대됨으로써 공식 권력승계를 매듭지었다.
김 위원장은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후 한동안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았다. 주로 군부대와 공장·기업소 등을 방문하는 현지지도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을 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통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식량난으로 상징되는 체제위기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해 시간벌기를 하는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김 주석 사후 체제안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최고 통치자로서 자신의 통치철학과 정책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그것을 실현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김 주석 생전의 정책과 노선을 답습하면서 그의 후광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김 위원장의 독특한 통치행태를 일컬어 전문가들은 '유훈통치'라고 불렀다.
김주석 사후 3∼5년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회주의권 붕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 반세기동안 북한을 통치해 왔던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 체제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된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위기, 그로부터 파생된 체제이완 현상과 탈북자의 급증 등은 김정일 정권과 '우리식 사회주의'체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은 유례없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유훈통치' 방식을 선택했다. 공식적인 정치일정이 사실상 중단되고 김 주석의 유훈에 의존해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특이한 체제가 탄생한 것이다. 당면한 체제위기 극복을 위해 시간을 벌고 김 주석의 후광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다.
김 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북한지도부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김 주석 사후 3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애도기간'으로 설정하고 그 명분아래 공식 권력승계도 미룬 채 비상체제를 가동시켰다. 이 기간 북한은 김 주석의 권위를 빌어 '유훈통치'를 지속하면서 군부 주도의 '위기관리체제'를 운영했던 것이다.
북한이 이 위기를 넘기고 본격 체제정비에 나선 것은 1997년 7월이다. 김 주석의 3주기 탈상을 마치며 '유훈통치'를 끝낸 뒤 이 해 10월 김 위원장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했다.
북한은 1998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체제도 새롭게 정비했다. 김 주석 사망 이후 걷돌던 국가체제를 추스려 국방위원장 중심으로 전면 재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김정일시대를 연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 6월 15일에는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도 가졌다. 또한 7월 19일에는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러시아대통령을 맞아 북러 정상회담도 가졌다.
작성일:2013-10-30 14:52:47 203.255.11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