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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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특별독재대상구역) - 완전통제구역/혁명화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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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0-28 15:38:51
조회수
807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치범수용소는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완전통제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화구역'이다. 완전통제구역은 종신수용소로서 여기에 한 번 수용되면 다시는 일반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수용자는 광산, 벌목장 등에서 처참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은 수용소 내에서 죽게 된다. 따라서 완전통제구역의 수용자들에게는 사상교육을 시키지 않고 채광 및 영농기술 등 생산에 필요한 지식만을 교육시킨다.

혁명화구역은 다시 '가족구역'과 '독신자구역'으로 나뉜다. 여기에 수감되는 정치사상범은 일정기간(1년 내지 10년) 경과 후 심사결과에 따라 출소가 가능하다. 출소시에는 수용소 내의 생활상을 일체 누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데 이를 위반하면 재수감된다.

이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출소된다고 해도 적대계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최하층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며, 국가안전보위부의 최우선 감시대상이 되어 직장배치, 이동 등 모든 부문에서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출소 후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량이 10년 가중된다.

안명철씨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중 함남 요덕의 '15호관리소'만이 유일하게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이분화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완전통제구역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아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수용소는 15호관리소 내의 혁명화구역뿐인 셈이다.

혁명화구역에는 대체로 북한의 엘리트와 재일조총련 간부와 인연이 깊은 북송교포나 그 가족들이 수용된다. 북한당국은 이들을 수용소에 수용하여 육체적 고통을 가한 뒤 사회에 복귀시킴으로써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 순응케 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사상범들은 모두 종신수용소에 수감된다.

귀순자인 안명철과 강철환의 증언에 의하면, 종신수용소에 수감된 사람 중 극히 일부는 종신수용소에서 혁명화구역으로 이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대부분은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어 다시는 일반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1999년 입국한 탈북자 김용씨는 완전통제구역 14호 관리소에서 생환한 최초의 북한인으로 알려졌는데 완전통제구역내의 생활 및 동료 수감자들, 그리고 전쟁포로로 추정되는 서양인이 존재했다는 증언을 했다(월간조선, 20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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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남 요덕수용소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의 정식 명칭은「제15호관리소」이며,「조선인민경비대 제2915군부대」라는 군부대 명칭으로 위장되어 있다.

요덕군의 일부 지역인 구읍·립석·대숙·룡평·평전 등 5개 리(里)를 포괄하고 있으며, 해발 1700m 에 이르는 병풍산, 백산, 모도봉 등이 천혜의 요새처럼 요덕수용소를 감싸고 있다.

수용소 남쪽 입구에서 북쪽 대숙리 초소까지 대략 35㎞, 동쪽 룡평리로부터 서쪽 병풍산까지는 20㎞에 이른다.

요덕수용소는 1950년대 말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고위층과 그 가족, 반체제 인사, 성분 불량자들을 내륙 오지인 함남 요덕군 구읍리, 입석리, 대숙리, 용평리, 평전리 일대에 집단 수용하면서 생겨났다.

1986년까지 구읍·입석리 지역이「혁명화구역」으로 돼 있었으나 1987년 수용소 재편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북쪽 대숙리 지역만 혁명화구역으로 남아있다.

나머지 구역은 모두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다.

또한 2000년 초 함북 회령 등 일부 지역 정치범수용소가 해체 또는 축소·통합되면서 일부가 이곳으로 옮겨와 기존의 혁명화구역으로 있던 백산지구가 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으며, 민간인 지역이었던 수용소 입구 구읍리 서림천 일대가 혁명화구역으로 편입됐다.

「혁명화구역」은 북한 전체 정치범수용소 가운데 유일하게 요덕에만 설치돼 있다. 여기에는 당·정·군의 고위층이나 그 자녀들이 수용되기도 한다.

전 부주석 이종옥의 아들 이만호, 당중앙위 민방위부장 김익현 등 북한의 고위층들이 이곳에 수감됐다가 석방됐거나 아직 남아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8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일부도 이곳에 수감된 적이 있다.

「완전통제구역」에는 지주, 자본가, 종교인, 국군치안대 가담자(6·25당시), 반정부인사, 민족반역자(남한행 탈북자) 등이 수용돼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정치범 본인과 직계 3대가 수용되며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살아서 나올 수 없다. 여기에서는 강제노동과 공개처형 등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

요덕수용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이른바 적대계층 가운데 반체제인사 즉, 숙청된 종파분자, 반당·반혁명분자, 과거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및 월남자가족,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자유세계를 동경하거나 찬양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당의 간부로 있다가 나중에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그 가족이 점차 주류를 이루었으며 특히 김일성우상화와 김정일 후계구축 과정에서 수용대상이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탈북자들이 증가하자 중국으로부터 압송되는 탈북자들도 일부 이곳에 수용되고 있다.

기독교를 믿었거나 남한으로 망명하려 했던 사람들, 탈북 이후 신분이 노출돼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사건의 주역들도 북송되면 이곳에 수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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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3-10-28 15:38:51 203.255.1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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