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과학

제목

완충기(완충의 해)

닉네임
NK조선
등록일
2013-10-25 16:02:03
조회수
533
경제계획 수행 과정에서 새로운 계획 단계로 진입하기 앞서 설정하는 일종의 조정기간을 말한다.

1992년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간된 최신판 '조선말대사전'은 완충기를 "사회주의 건설에서 경제발전의 한 단계의 과업이 끝났을 때에 이미 달성한 성과를 공고히 하고 다음 단계의 새로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력량을 보충, 정비, 재편성하는 준비시기"로 정의하고 있다.

1984년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발간된 '백과전서' 제6권은 완충기를 "사회주의 건설에서 한 단계의 과업을 수행한 다음 새 단계의 과업을 수행하기 앞서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고 새 과업의 성과적 수행을 위한 준비사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목적으로 특별히 설정하는 일정한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백과전서' 제6권은 완충기가 사회주의 경제발전에서 계속 높은 발전속도를 보장하며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완충기를 전쟁에 비유해 설명한 바 있다.

"완충기라는 것은 전쟁에 비유하여 말하면 어떤 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끝났을 때에 소모된 병력과 식량, 피복, 무기, 탄약 같은 것을 보충하고 전투대오를 정비하고 다시 편성하며, 이미 쟁취한 진지를 더욱 튼튼히 하고 다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새 전투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김일성,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나서는 당면한 몇가지 과업들에 대하여(1959.12.4)", 김일성저작집 제13권, 조선노동당출판사, 1981, p.207).

북한이 경제계획 수행과정에서 완충기 또는 '완충의 해'를 처음 설정한 것은 ▲1960년 ▲1977년 ▲1985∼1986년 ▲1994∼1996년 총 네 번에 이른다.

북한은 5개년계획(1957∼1961년)을 끝내고 제1차 7개년계획(1961∼1967년)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1960년을 완충기로 지정했다. 김 주석은 1959년 12월 열린 당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 1957년부터 시작된 5개년계획을 결산하는 가운데 이 계획을 2년 이상 앞당겨 끝냈다고 밝히고 다음 7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완충기가 필요하다며 1960년을 완충기로 규정했다.

이어 1971년부터 시작된 6개년계획을 1976년 완료하고 1977년 한 해를 완충의 해로 설정한 뒤 1978년부터 제2차 7개년계획에 돌입했다. 김일성 주석은 6개년계획 4년차에 해당하던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8차 전원회의에서 기존 계획목표보다 상당히 상향조정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라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후 각각 1200만t과 2000만t으로 설정된 강철고지와 시멘트고지를 점령하지 못하자 이의 달성을 위해 1977년 한해를 '완충의 해'로 설정했던 것이다. 북한은 제2차 7개년계획과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년) 사이인 1985∼1986년 2년과 제3차 7개년계획 시행이후 1994∼1996년 3년을 다시 완충기로 설정했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북한은 새로운 계획 수행을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완충기를 설정한다고 밝혔으나 제2, 3차 7개년계획 이후 완충기는 새로운 계획을 위한 준비보다는 기존 계획의 실패에 따른 미비점 보완의 의미가 훨씬 강했다.

특히 제3차 7개년계획의 경우 처음으로 '실패'를 공식 자인하고 완충기 설정과 함께 완충기의 역점사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이목을 끌었다. 북한은 1993년 12월 8일 평양에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시장 상실과 교역부진으로 제3차 7개년계획의 중요 지표들이 계획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2∼3년간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며 이 기간 농업제일주의·경공업제일주의·무역제일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1994년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7차 회의에서 완충기 과업을 거듭 확인하고 이를 원만히 달성하기 위해 6개항의 '결정'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3대제일주의 방침을 '혁명적 경제전략'이라고 부르면서 그 관철만이 사회주의 자립적 경제토대를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혁명적 경제전략'에서 두드러진 것은 북한이 경공업제일주의를 표명한 것인데 종래 중공업 우선의 경제전략을 추진해오면서 경공업발전에 일정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1994∼96년 3년으로 설정된 완충기는 김일성 주석 사망(1994.7.8)과, 이 즈음 겹친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공식적으로 결산되지 않은 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편 '완충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1967년 제1차 7개년계획이 끝난 뒤 북한은 1970년까지 3년간 계획기간을 연장한 적이 있다.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결정된 3년 연장조치는 북한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추진하면서 국방건설에 대한 지출을 과도하게 집행함으로써 계획 수행에 더 많은 시일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작성일:2013-10-25 16:02:03 203.255.111.242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함께하는 협력사
통일부
NIS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대한민국 국방부
외교부
이북5도위원회
사단법인 북한전략센터
  • 제호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대표전화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해범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chosun@chosun.com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