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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김정일 후계자 김정운은 누구인가
 닉네임 : nkchosun  2009-01-15 16:07:34   조회: 2029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 위원장의 삼남 김정운은 세 아들중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두 형인 정남(38), 정철(28)과 달리 외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아 사진도 공개된 게 없다.

그는 1984년 9월 25일 평양에서 김 위원장의 세번째 부인 고영희(2004년 사망)씨에게서 태어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경력은 90년대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으로 귀환해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 다닌 것이 전부다.

정운은 평양 귀환 후 어떤 공식 직책도 가진 적이 없으며, 이달 초 후계자로 내정된 후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운은 동복형인 정철, 여동생 여정(22)과 함께 스위스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스위스에서도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생활한 탓인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라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정운은 스위스에서 “자본주의의 나쁜 문물에 물들 것”을 우려한 김 위원장과 생모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 이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고, 외식할 때에는 김 위원장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스위스 주재 리 철 대사와 반드시 동행했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은 외부출입을 이같이 엄격히 제약하는 대신 스위스의 대형 저택 안에 왕재산경음악단 단원들을 함께 상주시키는 등 평양의 관저에 버금가는 호화로운 분위기을 갖춰줬다는 것.

정운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했으나 등하교 하는 대신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원으로 등록한 이 대학 교수들이 정운의 집에 드나들며 대학 교재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공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외부의 일반 세상과 격리된 성장 과정이 그의 성격과 행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앞으로 그의 후계자로서 행보와 관련 주목된다.

정운은 생모의 생전에 ’샛별장군’으로 불리는 등 김 위원장의 세 아들중 후계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점쳐졌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성격과 외모를 빼닮아 아버지의 남다른 사랑을 독차지한 데다 어릴 때부터 생모 고영희의 영향을 받아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심이 상당히 강하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정운에 대해 “유약한 성격의 정철과 달리 정치적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이며 영악하고 변덕스럽다”고 전하고 있다.

10년간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도 자서전 ’김정일 요리사’에서 정운이 “아버지 얼굴을 쏙 빼닮았다. 체형까지도 흡사하다”고 전했다.

“(정운이) 나와 악수할 때 험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은 증오스러운 일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한 왕자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는 후지모토씨의 말도 정운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운은 생모 생전에 군복 차림에 권총을 차고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에 앞서 현장 답사를 하면서 “선군 정치”를 역설하곤 했고, 특히 김 위원장 앞에서 선군정치를 찬양하고 계승을 외치는 정치적 행보를 자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복형 정남에 대한 견제 의식도 상당해, 생모가 사망한 직후 후계자 입지가 우려되자 2004년 11월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들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암살을 준비하다가 오스트리아 정보기관에 의해 저지당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운은 키가 175㎝ 정도이고 체중은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해 90㎏를 웃돌며 20대임에도 고혈압과 당뇨가 상당히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모 사망 전에는 후계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들로 각광을 받았던 그는 생모 사망 후 아버지의 관심이 예전같지 않은 데다 한때 김 위원장의 네번째 부인 김옥의 견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술에 빠지는 바람에 건강이 더 악화됐다는 소문도 있다.

농구를 좋아하는 그는 형 정철과 함께, 한때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로 알려졌던 북한의 리명훈(234㎝), 북한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리던 박천종 등으로 남자 농구 ’우뢰팀’을 만들어 농구경기를 즐겼으며, 리명훈의 미프로농구(NBA) 진출을 아버지에게 졸라 실제 리명훈의 해외진출이 추진되기도 했다.

정운의 생모인 고영희씨는 제주도 출신 고경태씨의 딸로, 1960년대 재일교포들의 대규모 북송 때 부모와 함께 북한에 간 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던 1970년대 중반 김 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가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줄곧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았다.

그는 1998년께 유선암을 진단받아 한쪽 유방을 절제해야 했으나 그럴 경우 ‘김정일의 여인’으로서 자리가 위태롭게 될 수 있다고 판단, 의료진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절제 대신 항암치료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5년여 뒤 암이 재발해 파리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고씨는 룡성구역에 별도로 조성된 위수구역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연합
2009-01-15 16: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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